소통할 줄 모르는 것이다
병원에 들렀다.
나 : 에어컨을 많이 쐬어서 그런지, 감기 기운이 있습니다.
의사 : 일단 3일 치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약 드시고 한 번 다시 보시죠
나 : 이 약 먹으면 낫겠지요?
의사 : 그건 모르죠. 나을 수도 있고, 안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로 저 병원은 가지 않는다.
환자가 약을 먹어도 좋아질지, 안 좋아질지 모른다고 너무 당당하게 얘기하는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약을 짓고 싶지는 않았다.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데, 본인 편한 대로 얘기하는 것이다.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읽어 줄 의도는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면, 알지만 권위 의식에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례이다.
강원도에 사시는 50대의 심리상담사를 직업으로 하시는 분과 인생 2막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서로가 잘하는 분야를 들려주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서로의 인생을 응원했다.
온라인에서 알게 되었지만, 느슨한 유대관계를 계속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알 수 있는 기회였기도 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니 유익한 대화가 되었다.
같은 세대에서도 이렇게 소통이 되기도 하고, 말이 안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세대 간 소통의 문제점만 들춰내고 관심을 가진다.
변하지 않는 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 모든 것은 변해간다.
어제와 같은 것은 없다.
내가 시대 변화에 발맞춰 가는지, 시대를 옛날의 나에게 맞추려고 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10대, 20대와 소통이 안된다고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50대가 예전에 소통하는 방식을 모른다. 나이가 들 수록,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소통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어렵다.
혹시 '내가 변해야 하는 걸' 인지하지 못해서, 소통이 안 되고 있을 수도 있다.
상대방 탓만 한다고 소통이 잘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