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24시간, 다른 느낌
출근해서 외부기관에 제출할 서류를 확인하다 보니, 덴마크 본사에서 보낸 서류 중 빠진 자료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덴마크와의 시차를 고려하면, 또 하루가 늦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앞선다.
그래도 오후 5시까지만 자료가 도착하면, 오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본사에 이메일을 보낸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후 6시가 되어도 회신은 없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기대도 크지 않아서, 실망도 크지 않았다.
날씨 좋은 어느 5월에 덴마크 본사 출장이 잡혔다. 본사 인근의 호텔을 예약하고, 이런저런 출장 준비를 한다. 그런데 한 통의 메시지가 와 있다.
혹시 저녁 늦게 호텔에 도착하게 되면, 미리 알려달라는 것이다.
호텔로부터 이런 연락은 처음 받다 보니, 정상적인 호텔인지 의심부터 든다.
나의 비행기 일정이면 호텔에 대충 밤 12시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호텔에 못 들어갈 수도 있나?
일단 0000~0100 사이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회신을 했다.
혹시나 해서, 코펜하겐에 여행 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런 종류의 글이 올라 와 있다.
저녁 늦게 호텔에 도착했는데, 호텔 문은 잠겨있어서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호텔에 따로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신 분은, 다행히 마침 호텔 손님 중 한 사람이 나오면서, 일단 호텔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직장 생활 후 20년 동안 여러 나라로 해외 출장을 다녀 봤지만, 덴마크는 처음인지라 그들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걱정만 앞선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 일단 비행기에 몸을 싣고 덴마크로 입성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00:30
호텔문은 여지없이 굳게 닫혀있고, 유리문 너머로는 아무도 안 보인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분명히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이 시간쯤 도착한다고 회신도 보냈었는데.
한국을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확인했던 내용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 때, 너무도 여유롭게 복도를 정리하면서 지나가는 누군가가 있다. 혹시 그냥 지나쳐갈까 유리문을 급히 두드린다. 그리고, 이내 시선이 마주쳤다.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어 주면서, 이제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면 담당자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렇데 또 10여분이 지나니 호텔 직원이 나왔다.
그런데, 미안해하는 표정은 아니다. 이런 시스템이 여기에서 정상이라는 의미이다.
이튿날 본사로 출근했다. 우리나라 도시에서의 출근길과 비교하면 너무 여유로워 보인다.
헤드폰을 끼고 가는 이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이도 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표정에도 조급함이나 서두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본사에 도착하여 Global Management Meeting에 참석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는 느끼는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그리 다르지 않다. 자기 일에 충실하고, 가끔씩 미팅을 가진다.
쉬는 시간에 싱가포르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 CEO가 말을 건넨다.
CEO : 여기는 모든 직원들이 CEO에게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다. 싱가포르랑은 다르다. (싱가포르에서는 현지 싱가포르인들이 많은 사무실에 근무했었다)
나 : 우리나라에서는 상급자와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미팅을 한다.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직원들은 직장 만족도는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 수평적 소통문화
- 뷔페식 점심 제공
- 본인 업무에만 집중하는 업무 방식
하지만, 관리자 특히 CEO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미팅을 가진 후 회식이 예정되어 있다. 미리 사전에 공지가 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래도, 참석은 자율적이다.
오후 4시에 업무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이어서 식당으로 이동해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각 나라의 요즘 상황에 대한 얘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도 들을 수 있고, 아주 가끔은 회사 얘기도 나온다.
그렇게 회식이 마무리되고, 싱가포르 지사장과 함께 숙소로 이동하려 나선다. 덴마크에 살고 있는 직원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저 길로 가면 우리 숙소 근처로 지나가는데, 차로 이동하면 그렇게 돌아가는 거리도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지 않는다.
덴마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개인적이다는 생각이 들다가, 어떨 때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여유를 가졌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렇게 덴마크에서의 일주일을 보내면서, 왜 덴마크는 우리나라보다 모든 것이 천천히 진행되는가를 생각해 봤다.
1. 불친절하다
: 서로 낯선 이에게, 또는 가게에 들어갈 때는 친절하게 맞아준다. 그렇지만, 식당에 들어갔다고 우리나라처럼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종업원은 종업원의 역할이 있고, 손님은 손님대로 식사를 즐기는 되는 것이다. 필요 이상의 친절은 베풀지 않는다.
식사시간이 길어져도 절대 식당에서 눈치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급하게 식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더 이상해 보일 정도로 여유 있게 식사를 즐긴다.
2. 각자의 생활에 더 집중한다
: 우리나라 사람은 주변을 의식하는 편이라고 하면,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이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주변에 쉽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먼저, 본인이 할 수 있다면, 굳이 함께 하자고 얘기하지 않는다. 서로 부담이 되지 않고 지내는 것에 익숙한 모습니다.
이런 경우의 단점은, 본인이 약하거나 처음 접하는 업무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업무가 진행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각자의 업무 처리 방식에 시시콜콜 입을 대지 않는 것이다.
업무 처리 과정에 간섭하기보다는 결과를 가지고 서로 얘기를 하는 편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방식의 담당 직원의 성장을 이끌어 낼 것으로 보였다.
3. 직장만큼 내 생활도 중요하다
: 조직이 수평적이다 보니 퇴근에 눈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없다. 그리고 직장은 계약된 조건에 따라서 출퇴근을 하는 곳이며, 직급에 상관없이 각자의 생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저녁 시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며, 직장 상사라고 해도 예고 없이 회식이나 야근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적 기반이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부분들도 보이지만, 우리에 비해서 주변에 덜 민감하고, 또한 서로에게 조금 더 무관심하게 지내면서 개인의 인권과 삶을 존중하는 것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의 일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또 다른 얘기들이 있지만, 덴마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함께 잘 사는 곳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