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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인용할 때는 주의해 주세요

끝나지 않는 퇴고

by 우인지천

그동안 독서기록을 남겼어야 했다.

책을 낼 줄 알았더라면...


하지만, 누가 알았겠나?

일기도 안 쓰고, 독후감도 쓰기 귀챦아 하던 한 젊은이가 언제가 글을 쓰게 될 줄은.


글을 써다 보니 예전에 읽은 책의 문구 중 일부가 장기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정확하게 기억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책 제목을 알아야, 다시 그 책을 펼쳐보고 정확한 문구를 찾아 볼텐데 도통 기억을 되살릴 수 없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내용을 내가 생각한 것처럼 써 내려갈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다.


글쓰기는 잠시 미루고, 예전의 그 문구가 좋았던 기억을 더듬어본다.


아! 생각났다.

도서관에 가서 예전에 읽었던 책을 대여하고, 예전 느낌으로 책을 뒤적여본다.


그래! 이 문구였어.

내가 감동받았고,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인생의 지혜가 담긴 이 문구.


감동적 문구를 내 글에 담고, 그 문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풀어낸다.

인용 문구만 5줄이다. 여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니, 반 페이지를 넘어간다.


나머지 원고도 어렵사리 마무리해서, 초안을 출판사에 넘긴다.

이어서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다.


"작가님, 한꺼번에 너무 많이 인용하시면 저작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용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으로 해 주시고, 출처를 밝혀 주셔야 합니다."


인용, 저작권

가끔씩 언론 기사로 접하던 용어들인데,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다니...

감동받은 문구를 찾았다는 즐거움은 잠깐이고, 다시 고민에 빠진다.


이 문단을 통째로 빼 버릴까?

아니야, 그러면 중요한 메시지가 빠져서 너무 허전한데.


창작을 해야겠다.

감동받은 문구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야겠다. 나는 작가니까.


1줄 적기가 힘들다.

입맛도 없다.


책이 완성될 수는 있을까?



초보작가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도대체 몇 개나 더 있을까?

이번 한 번만 책을 낼 욕심이었다면, 여기서 끝을 내는 게 맞겠다.


왜냐하면 아직 출판사의 요구사항이 더 있다는 직감이 들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책 10권을 출간하는 걸 목표로 잡았는데, 이 정도에 무너지면 안 되지.


출판사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여, 창작 원고를 써 내려간다.

책 한 페이지에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이 정도면 출판사에서도 만족할 거야' 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출판사로 다시 보낸다.


'역시나 이게 끝이 아니었어'


작가님, 숫자 표기는 통일하는 게 좋겠습니다.
작가님, 꺽쇠나 괄호도 종류에 맞게 통일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작가님, 어색한 문장은 한 번 더 보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출판사 편집자가 작가를 찾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이다.


"작가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꼼꼼하게 살펴 주세요"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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