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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Aug 09. 2020

30대에 발견한 사춘기

나도 작가다 공모전

"나다운 게 뭔데?"

청춘 드라마나 성장소설 같은 곳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 대사는,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나 이직의 질풍노도를 다시 겪는 30대의 나에게 의외로 선뜻 답할 수 없는 깊은 의문을 남겼다.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사춘기 소녀나 꿈을 찾는 청년이나, 직장 생활에 지친 성인이나 구분 없이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마음 조각인 것 같다. 요새 유행하는 MBTI 분류에 따른 여러 상황별 해석이나, 여러 성격검사 링크들이 카카오톡을 타고 돌며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뭐가 나다운 건지 아직도 명확하게 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 그저 철없는 어른이라는 뜻이 아닌 것 같아 그런 링크를 받을 때마다 위안이 되곤 한다.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MBTI도, 여러 가지 성격 검사도 여러 가지로 제안해주곤 한다. 때로는 네 글자의 알파벳이었다가, 한 두 가지의 단어였다가, 하나의 문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활기찬 사람들 앞에서 조용하고 진중한 사람이기도 하고, 나보다 차분한 사람들 앞에서는 말괄량이가 되기도 한다. 이전 직장에서의 나와 지금 직장에서의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성인의 나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어릴 때 욱하는 성질이 있던 부분이 나이를 먹으며 다듬어지기도 하고, 예민했던 부분들이 많이 둥글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러 가지 성격 검사에서나 긴 시간 동안 잘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좋아하는 일은 끝장을 본다는 부분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부분은, 내 삶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곤 했다. 대표적인 예로 뮤지컬에 빠졌을 때는, 1년에 50장 이상의 티켓을 모을 정도로 많이 보기도 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궁금해서 열흘간 뉴욕으로 날아가 매일 뮤지컬을 1편에서 2편 정도 보기도 했다. 백수 시기를 맞이하면서 뜨개질에 빠졌을 때는, 코바늘을 처음 잡아보는데도 인형을 끝까지 만들어보고 싶어서 새벽까지 누가 말리지 않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뜨개를 하기도 했다. 결국 서랍을 하나 사서 뜨개실과 뜨개 용품으로 채우고, 장식장에 내가 만든 뜨개 인형들이 가득할 때까지 시간만 나면 뜨개를 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나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5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다. 이직을 다른 사람보다 자주 한 편이다. 앞서 말한 성품대로라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회사에서 10년은 거뜬히 다녀야 할 것 같은데, 사회 생활면에서는 달랐던 셈이다. 살다 보면 나의 그런 경력을 공격하는 사람도 만나곤 했다. 금방 포기하는 사람이 아닌지, 참을성이 없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매서운 말들은 강해 보이는 나의 마음을 할퀴기도 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직장 사이의 9개월 동안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인 걸까, 나는 직장생활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걸까? 여러 번 이직하는 동안, 누군가의 추천이 있었거나 고용안정성 문제로 더 나은 직장의 제안을 받는 등 누구든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만 네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는, 살고 싶어서 지금은 쉬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마음이 회복될 때까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왜 이런 경력을 갖게 되었는지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나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나다운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30대에 다시 탐색하기 시작했다. 성적이나 조건, 되고 싶은 직업의 숭고한 이미지에 맞춰 간호학과에 진학했던 사춘기 시절에 정말로 했어야 할 일을 늦게 시작한 셈이었다. 집에 틀어박혀 뜨개질을 오랜 시간 동안 하거나,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나 드라마를 하루 종일 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하나하나 적어가며 시작한 일 중에 글쓰기와 그림 그리는 일이 있었고, 어린 시절의 작가의 꿈에 대해 생각하면서 쓴 글들을 모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내가 재밌어서 쓴 글이나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는 타인이 라이킷을 눌러주고, 칭찬해주는 일이 내게는 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인들은 내가 쓴 글을 보며 '너답다'라는 평을 자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단단해진 마음으로 나를 다시 보았더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보였다. 나는 시간이 걸려도, 여러 번 시도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한 번에 그 길을 찾았든, 20대에 이미 그것을 이뤘든 그것은 내게 비교 급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단지 남들보다 좋아하는 일이 여러 가지일 뿐이고, 하나하나에 진심을 다하느라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쉽게 참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 조직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결국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기로 했다.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며 자기부정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30대에 발견한 사춘기 소녀와 화해했다.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 평범하게 자기소개를 하자면, 전 국민이 이름을 알만한 회사에서 꿈꾸던 것 중에 하나인 일을 하고 있고, 퇴근을 하면 천천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출퇴근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장인이지만, 언젠가는 작가로서의 내 이름이 지금의 명함보다 큰 존재감을 가지는 날도 올지 모른다고 기대한다. 혹시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나는 좋아하는 일에 진심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이고, 그걸 깨닫게 해 준 일이 매일 조금씩 글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30대의 사춘기를 보내는 나는 매일 어떤 날은 일기에 가깝고, 어떤 날은 내 상상 속의 인물에 대해 쓰고, 어떤 날은 그냥 떠오르는 장면을 그리듯이 쓴다. 그런 나의 다양한 면들이 써 내려간 표현들이 모여 글의 재료가 되고, 그런 행위가 꿈꾸는 나로 살게 한다. 나는 오늘도 꿈을 이루는 나로 살기 위해 출근하고 퇴근하며, 끄적이고,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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