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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Sep 26. 2022

아빠가 먼저라니

어쩌다 주간일기

이번 주에 아기는 8개월이 되었다. 요즘 들어 아기가 갑자기 커버린 것 같을 때가 많은데, 문화센터에 가면 혼자 앉아있고 뭔가를 따라 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낯선 기분이 든다. 4개월 무렵 여름 학기를 다닐 때만 해도 40분 동안 안고 어르며 활동을 따라가기 바빴는데 독립된 존재임을 혼자 앉아 뽐내는 아기를 보면 감개가 무량하다. 물론 그만큼 나를 따라다니며 움직이고 장난감을 꺼내는 속도도 빨라져서 더욱 부지런해져야 하는 점이 있긴 하다.


개월 수가 바뀐다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는데, 이번 주에는 아기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아직 네 발로 기지는 못하는 아기고 앉은 상태에서 기는 자세로 바꾸거나 그 반대를 하는 것은 하지 못하는 아기였는데, 요상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기어 다니다가 앉은 것도 아니고 엎드려 기는 것도 아닌 앉-엎 자세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앉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확실히 앉혀주지도 엎드려주지도 않고 같이 엎드려서 사진과 영상을 열심히 찍고 있었는데, 입을 오물거리더니 전과 다른 양상의 옹알이를 갑자기 시작했다. '마마, 바바, 뱌뱌' 하면서 이전보다 음절이 들리게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다양한 음가를 내며 소리를 내긴 했지만, 음절이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맘때쯤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문화센터를 다녀도 마스크 쓴 어른들만 봐왔기 때문에 이런 소리도 늦으려니 생각했었는데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자기가 낸 새로운 소리가 꽤 맘에 드는지 까르륵, 웃으면서 '빠빠, 맘맘마'하는 소리를 계속 냈다.


새로운 모습은 또 있었는데, 기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하더니 네 발로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우리 아기는 물에 들어가서 씻는 것과 똥기저귀를 갈면서 엉덩이를 물로 씻는 것을 좋아하는데, 화장실로 가는 복도 끝에서 혹시 올까 싶어 아기를 부르자 까르륵 웃으면서 화장실까지 꽤나 긴 거리를 깡총거리며 기어 왔다. 네 발로 기는 것은 아직 못하지만 더 빨리 오고 싶어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는데, 놀라울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이제 아기가 혼자 기어 다니도록 놓고 부엌일을 하는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아기가 의미를 담아 말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한참 남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음절이 들리는 말을 하기 시작하자 당연히 '엄마'를 먼저 말해주길 기대했다. 이제야 자음과 모음이 합해진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므로 한참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매일 출근하는 아빠보다는 휴직하고 매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엄마를 먼저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 기대가 깨지는 것은 평온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평소에는 아침 시간을 함께 놀아주지 못해서 주말에는 주로 남편이 밤잠에서 깬 에너지 넘치는 아기와 놀아주는 편이다. 토요일 아침에도 느긋하게 기저귀를 가는 아기를 보고 늦잠이라도 잘까 싶었는데, 아기가 너무 분명하게 '아빠'라고 남편을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놀란 남편도 '방금 아빠라고 하지 않았어?'라고 말했고 나도 그렇게 들은 것 같다고 말했지만 옹알이하다가 얻어걸린 거겠지, 하고 웃으며 넘어갔다. 엄마도 아니고 마마도 파파도 아니고 아빠라니 조금 신기하긴 했지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빠를 지칭해서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날 오후에 아기는 '빠빠'와 '파파', '아빠'를 백 번도 넘게 말했다. 평소에는 아기가 남편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보통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아빠가 놀아준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은 하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 꼭 가야 하는 결혼식이 있었던 남편은 아기가 두 번째 낮잠을 자는 사이에 자리를 비웠고, 해가 지고 어두워져도 아빠가 나타나지 않자 아기는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며 '아빠', '파파'를 계속해서 말했다. 왠지 서운한 기분이 들어 '아빠는 지금 없어,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 엄마 해봐, 엄마'라고 나도 아기에게 '엄마, 엄마, 마마'를 연호했으나 이미 '아빠'에 중독된 아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원래 아기는 아빠를 좋아하기도 하고, 엄마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지만 우리 아기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빠 목소리에 크게 반응하는 아기였다. 얼마 전 남편이 꽤 길게 미국 출장을 다녀왔을 때에도 할머니와 다르게 낯설어하지 않고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말을 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엄마가 먼저일 줄 알았는데 아빠가 먼저라니! 조금 충격이었다. 어떤 집은 아기가 엄마도 '아빠', 아빠도 '아빠'로 통일해서 부르기도 한다던데 설마 그게 내가 되진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도 아기는 '빠', '파', '아빠'를 부르고 펄쩍펄쩍 기어 다니며 아빠를 반겼다.


아주 약간은 그래도 의미를 담아 불러줄 땐 엄마가 먼저겠지, 하는 마음이 남아있지만 아기와 아빠가 서로 활짝 웃으며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최선을 다해 육아에 참여하고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마음과 노력을 아기가 알아주는 것 같기도 했다. 요즘 들어 아기는 주말이 되면 아빠가 같이 시간을 더 많이 보내준다는 것을 아는지 주말에는 낮잠도 짧게 자고 놀고 싶어 했다. 오늘 보니 지난주보다 팔다리가 더 길어진 것도 같았다. 남편과 나는 어느새 아기가 커서 저렇게 말도 하고 뛰듯이 기어 다닐까, 싶었다. 말하고 걷는 어린이들을 보면 우리 아기는 멀었겠지, 싶었는데 금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하루하루 크고 달라지는 모습이 반갑고 너무 사랑스러우면서도 아깝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열심히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있지만 어제와 오늘의 아기가 달라지는 것이 아쉽다. 내일의, 다음 주의, 다음 달의 아기는 더욱 사랑스럽고 예쁘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 어릴 때처럼 안아만 주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놀고 싶을 땐 내려달라고 표현도 한다. 아직은 품 안에 아기처럼 더 안아주고 싶은데, 언젠가 내 품에 안기려고도 하지 않는 청소년이 되겠지 싶어 약간 서글프기도 했다. 아기가 '아빠' 좀 했다고 생각이 멀리멀리 간다. 그래도 아빠가 먼저라니! 엄마는 오늘까지만 서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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