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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변신을 꿈꾸며

괜히 시작했다.

by 행파 마르죠

울 아파트는 무지 낡았다. 우리 집은 아파트 젤 꼭대기 층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는 별반 매력이 없는 층이다.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우리 집 앞에 50여 평 남짓하는 드넓은 옥상이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 같은 곳이다. 낡고 지저분하고 곳곳에 물건들이 막 쌓여 있다. 이사 가면서 버린 쓰레기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난장판이다.

발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어 보인다.


근데 난 이 곳이 좋다. 사방팔방의 전망을 맘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놀이터 같은 곳이다.


계획을 세웠다. 옥상을 변신기킬 계획 말이다. 기간은 2~3주 정도 잡고, 일단 청소부터 하자. 아무도 도와줄 것 같지 않으니 1인 청소 노릇을 해야 한다.


점검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심각하다. 장독대 하나를 열어 보니 웬 구더기가 나왔다. 얼른 닫았다.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저 구더기를 넘어서야 할 것 같다. 다시 열었다.


'저건 벌레가 아니야. 그냥 끊어진 실타래들이야'

이럴 때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거지.


집으로 가져와서 그 하얀 물체를 변기에 털어 내었다. 장갑을 끼고 고개를 돌리고

샤위기로 씻어 내렸다.


괜히 시작했다. 토할 것 같다.


다시 맘을 가다듬고 두세 번 더 헹구고 다시 가져갔다. 큰 산 하나를 넘었다. 잘했다. 빗자루를 들고 구석구석 세월의 무게만큼 쌓인 바닥을 하염없이 쓸고 또 쓸었다.


쓰레기들을 모아 쓰레기 비닐에 담았다. 빈 항아리에는 화분에서 나온 흙을 담았다.

항아리에 흙이 수북이 쌓였다. 저기에 예쁜 식물들을 심어야겠어. 두 시간 여동안 쓸고 담고 물청소하고 나니 허리가 꾸욱 꾸욱 아파 온다. 안 되겠다. 앞으로 계속 프로젝트 진행하려면 몸 관리 부터 잘 해야지.

여기까지 하자.


한쪽이 깨끗해졌다. 빈 공간이 생겼다.

속이 뻥 뚫린다.


야호


공간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공간을 꿈꾸며,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옥탑 공원을 그려보며 미소를 지어 본다. 손톱에 묻은 때를 박 박 문지르며 이런 멋진 프로젴트를 혼자 시작한 내가 기특하다. 기특하다 셀프 칭찬한다.


훗 야옹아 쫌만 기다려. 맘껏 뛰어놀 수 있게 이 엄니가 힘 좀 써 볼게

냐옹 고맙다냥. 울 엄마가 최고 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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