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 재도전기

워밍업 시작이 반이죠

by 행파 마르죠

중년이 되면 쉼표를 찍어보나 했다.


젊은 날의 불안과 고난 이런 단어는 지구 밖으로 사라질 줄 알았다. 오십을 기점으로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해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다 착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생활전선에서 일을 하고 있고, 누군가를 돌보고 있고 밥을 짓고 있다.


그러다 달라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일하는 와중에서 내가 시간 내어 할 수 있는 딴짓을 하고 있다.


1일 1 드로잉 ~
하루 하나 그림 그리기가 미션이다. 이름도 이쁘신 엘프님 지도하에 그리고 싶은 사진이나 작품을 보면서 그려보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노트에 책상에 벽지에 휴지에 펜 하나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관찰을 해야 한다. 대상을 보고 특징과 표정을 잡고 손목을 이용해 진득하게 엉덩이 대고 앉아 그리면 된다.


잡생각이 없어지고 몰두하게 된다.


고 3 때 그림대회 나간다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고3이 뭔 그림이냐고 못 나가게 하셨다. 소심한 복수를 했다. 그 선생님 시간에 보란 듯이 수업 안 듣고 한 시간 내내 엎드려 있었다. 일주일 내내 그랬다. 고전문학 선생님이셨는데 그 선생님도 만만치 않았다. 어처다 일어나서 눈이 마주쳤는데 고개를 획 돌리셨다.


참고로 그 선생님은 남자 총각 선생님이셨다.

애들이 장난 삼아 첫사랑 얘기해 달라고 하면 얼굴이 빨개지셨던 내성적인 분이셨다.


사춘기가 늦게 찾아와 늘 불안증을 겪고 있던 내게 선생님은 자꾸 혼을 내셨다. 왜 지각하냐 왜 자꾸 미술실을 가냐 왜 왜 왜

따지고 물으셨다. 어차피 말해도 이해를 못 하시니 행동으로 한 것뿐인데 말이다.


그림 그리는데 뭔 이유가 필요하지? 선생님은 왜 그 고리타분한 고전문학을 하셨는데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셨다. 그림 그리지 말고 공부하라고~난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고 3 이란 말 안 해도 건 본인이 제일 잘 안다. 공부 맘먹고 하면 누가 옆에서 건드려도 모르고 몇 시간이고 했다.


다만 머리에 딴생각이 들면 어차피 공부도 안 되니 그림을 그린 것뿐이었다. 그 그리는 시간이 나도 모르게 길어진 것뿐이었다.


지금은 내가 그림을 그리던 글을 쓰든 간에 딴지 걸고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가 직장 생활과 집안일에 갇혀 시간을 못 내는 것이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리지 말라고 할 땐 그리고 그려도 되는 여건이 되면 못 그리니 말이다.


그래서 1일 1 드로잉을 시작했다. 스스로 못 하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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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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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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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차 그림.


오늘까지 3일째 그리니 그림 세 개가 나왔다.


브런치 글쓰기는 일주일이 넘었다.


글쓰기와 그림의 공통점은?


삶을 관찰하게 된다

밀도 있는 삶이 된다.


생각이 없어진다. 생각의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쓸데없는 잡생각이다.

나를 갉아먹는 기생충 같은 것이다.


시간이 잘 간다. 너무 잘 간다. 화살보다 더 빠르다.


나를 바라보고 웃게 된다. 쓰다 보면 그리다 보면 마음의 찌꺼기가 걸러져 카타르시스를 체험한다.


그러니 그리고

그러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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