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내게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봤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과하다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병원에 혼자 다니는 법을 연습시켰다. 물론 보내기 전에 미리 병원에 전화를 걸어 아이상태를 알려주고 내심 불안한 마음에 멀리서 잘 가는지 미행도 했다.
지하철을 탈 때면 표를 직접 끊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고 노선을 보는 법과 갈아타는 법도 설명해 줬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음식점에 가서는 직접 주문을 해보게 했고 리필하는 법도 가르쳤다. 음식점에 지불하는 음식값에는 우리가 받아야 하는 서비스값이 포함되어 있으니 눈치 보지 말고 예의 바르게 부탁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처음엔 쭈뼛쭈뼛했지만 금방 익숙해지고 본인들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좋아했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한 번에 사기보다는 적어도 두세 군데 가격을 비교하고 사는 것이 좋다고 알려줬다. 학교 교육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일들을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알려준 것이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쯤 빼빼로 데이 전날이었다. 친구와 빼빼로를 사러 가기로 했다며 나갔다.
돌아온 아이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빼빼로를 사기 위해 첫 번째 슈퍼에 갔는데 딸이 다른 집도 가보자고 하니 친구는 귀찮다고 하며 그곳에서 그냥 샀다는 것이다. 하지만 딸은 두 번째 집에 가서 친구와 같은 가격에 하나를 더 많이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이 나서는 그렇게 비교해 보고 산 자신을 꽤 기특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경험을 한 이후로 딸은 똑똑한 소비를 하며 내 바람대로 지금까지 야무지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친구와 옷을 사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대부분 엄마가 사다 주시거나 언니들의 옷을 물려받았기에 친구와의 쇼핑은 처음이었다. 어떤 옷을 사야 할지 망설이고 어려워하는 나와는 다르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옷을 잘 고르는 친구의 모습에 나는 놀랐고 나와 비교하며 부러워했었다.
그 친구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을 보며 자신감이 있어 보였고 그렇지 못한 나는 초라하게 느껴지며 괜히 기가 죽었던 것이다.
그러한 기억들 때문에 상황이 될 때마다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고 내가 아는 것을 모두 알려주고 싶었다. 나처럼 경험이 없어서 주눅들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뿐 아니라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다. 갑자기 엄마가 일찍 떠나신 후 살면서 너무도 모르는 게 많은 내 자신이 많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 돌아가셨으니 물어볼 수도 없었고
그럴 때마다 언니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혼자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씩 알아 가야 했다.
물론 그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나는 어렵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엄마의 빈자리는 아쉬움으로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들이 5개월 때부터 갑자기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네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서 대학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검사를 해보니 체내에서 락테이스 같은 유당분해 효소가 나오지 않아 유당이 함유된 식품, 특히 우유등을 소화 못하는 증상인 유당불내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것을 알기까지 한 달이나 시간이 걸렸고 아들은 그사이 계속 설사를 하며 고생을 했다.
초보 엄마인 나는 점점 야위어 가는 아이를 보며 미안하고 무능력한 부모가 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배앓이를 자주 했었다. 아들이 내 체질을 닮아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했고 만약에 엄마가 계셨다면 대처방법을 빨리 알려주셔서 아들을 덜 고생시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처럼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 때나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 물어보고 싶은 엄마의 부재는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와는 다르게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리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이 독립을 한 뒤부터는 새로운 방법으로 알려주기 시작했다. 한 번은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 엄마 부두조림 하는 법 좀 알려줘요, 엄마 두부조림이 너무 먹고 싶어요"
며칠뒤 전화를 걸어
"두부조림 해 먹었어?" 물어보니, 아들은 "네, 엄마가 해주던 맛 하고 비슷하긴 한데 똑같지는 않아요" 하며 웃었다.
" 엄마도 외할머니 음식맛 흉내 못 내는 거 아직도 많아, 아직도 찾아가는 중이야, 너도 몇 번 해보면 맛있을 거야."
내가 레시피를 적기 시작한 것이 아마 그때부터 인 것 같다. 아이들이 그 레시피를 보며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나를 기억하고 우리들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지금도 유난히 맛있게 된 음식이나 아이들이 잘 먹고 좋아하던 음식을 할 때면 틈틈이 레시피를 적어둔다. 이처럼 먼저 살면서 알게 된 삶의 지혜들과 레시피를 전해주는 건, 어쩌면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전하는 편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