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엮는 따듯한 실

그리움의 조각 5

by 조작가

"응~ 조작가 또 글쓰기 시작했네~"

요즘 남편이 나를 놀리며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조작 가라는 어감이 별로라서 하지 말라고 해도 나를 놀린다. 그러면서 요즘 들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응원도 아끼지 않는다.

나의 독자 1호가 된 남편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마도 갱년기이거나 아니면 나와 공유하는 감정들이 많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해 본다.

이처럼 내가 남편에게 '조 작가' 소리를 듣게 된 건 새로운 취미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쓰던 일기 이후로 오랜만에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첫 수업날 매주 과제가 있다는 강사님의 말에 덜컥 걱정이 되어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풀이 죽었다가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에 식탁에 앉아 과제를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몇 십 년 동안 안 쓰던 녹슨 기계가 '끼익 끼익'억지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머리에 두통이 생기고 금세 눈도 피곤해졌다.

또 무엇을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설레고 좋았다

과제를 하기 위해 생각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문득 연애시절 적었던 일기가 생각났다.

몇 해 전 아들이 우연히 그것을 읽어보고는 놀렸던 기억에 다시 한번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창고 한구석에 넣어 두었던 박스를 찾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알록달록한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딸이 걷기 시작할 무렵 떠준 분홍색 원피스와 모자 그리고 목도리가 들어 있었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처음 뜨개방에 가서 어떤 색과 실로 무엇을 뜰지 고민하며 무척 행복했었다.

그곳은 나를 어릴 적 문방구라는 신세계에서 신이 나서 뛰어다니던 어린아이로 만들어 주었다.


'완성된 옷을 입히면 얼마나 이쁠까'


뜨는 내내 빨리 떠서 입히고 싶은 마음에 밤을 새워가며 뜨개질을 했다.

완성을 하고 나서 원피스와 모자, 목도리까지 입혀보고는 아장아장 걷는 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그해 겨울을 따듯하고 행복하게 보냈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어릴 적 추워지기 시작하면 엄마는 털옷을 많이 떠주셨다. 장갑, 모자, 목도리, 조끼, 양말까지 위아래로 깔 맞춤이었다.

자다 일어나면 손, 머리, 가슴과 등, 발에 대보기를 반복하시곤 했다. 그러다가 하나가 완성되면 또 다른 것을 뜨기 시작하셨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아는 엄마의 유일한 취미였다.


나도 엄마처럼 딸에게 직접 뜬 털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따듯한 온기의 추억을 딸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불현듯이 외할머니도 엄마에게 털옷을 떠 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상상을 해보니 아마도 당시에는 털옷이 아닌 손바느질로 옷을 짓어 주셨겠구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엄마도 나처럼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본인의 방식으로 공유해주고 싶었던 거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실향민이시다. 6.25 때 외삼촌과 둘이서 피난을 오셨다.외할아버지께서는 엄마와 장손인 외삼촌만 피난을 보내셨다.


"전쟁 금방 끝나니까 잠시 남쪽에 내려가 있다가 전쟁 끝나면 곧 다시 만나자"


그렇게 금방 만날 것 같은 이별은 몇 십 년이 흐르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만날 수 없는 긴 이별이 되었다. 나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엄마는 외할머니와 헤어져 영영 만나지 못했다.

일가친척도 없는 곳에서 어린 엄마가 짊어져야 했을 외로움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감히 생각해 보기도 힘들다.


겨울만 되면 외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뜨개질을 하고 그것을 내게 입히며 외로움을 달래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나만 엄마를 그리워했던 것이 아니라 엄마도

외할머니를 많이 그리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면서 엄마가 안쓰러워졌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알 수 없는 엄마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어린 엄마를 꼬옥 안아주며 마치 외할머니가 하시듯 엄마에게 말해 주고 싶다.


"씩씩하게 열심히 잘 살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분명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말을 엄마에게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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