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의 사명에 대하여
미망
-남편은 죽고 홀로 남아 있음.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음.
이 단어가 품은 낡고 무거움을,
떨쳐내려 한다.
그가 남긴 온기와 흔적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을 피워 올리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간절히 바랐을 우리의 행복이,
그저 염원에 그치지 않게.
이것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기억을 지키는 힘,
그 믿음 하나로 살아가는 미망인.
잊지 않기에,
희망을 품고
살아내려,
고기를 굽는다.
살아 있는 자의 사명으로.
남편이 떠난 뒤,
막막한 세상살이를 시작하게 된 곳.
내 어린 시절이 묻어 있기도 한 이곳은,
부모님께서 남동생에게 물려주신 족발집이었다.
세상이 회색빛 슬픔과 상실로 지배당했어도,
그 안에서 나는 최대한 밝게 인사하고,
농담도 하며 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고,
그들은 그런 나를 애써 모른 척해주었다.
그들에게 환영받는 존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암흑 속에서 괜찮겠나’ 하는 측은한 시선만은
받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가.
엄마, 남동생, 그리고
유년시절부터 함께한 가족 같은 직원들.
가까운 사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
남편의 장례를 함께 치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돌연히 맞닥뜨린 상실과 비탄,
공허를 오락가락하는 비극의 현장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슬픔에 탈진된 나를 보았다.
불쌍함의 상징이 된 나는,
그들에게 보급된 그늘이었다.
가감 없는 관용을 베풀라는
무언의 명령이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을 다 써주지 못한 미안함이,
어느새 자신을 책망하게 했겠지.
자비를 베풀지 못한 순간마다,
스스로를 냉혹한 인간으로 몰아세웠겠지.’
감지하지 못한 사이,
내 슬픔이 그들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아이 학원은 어디로 보내야 할까.
매 끼니는 무엇을 차려야 할까.
그저 평범한 엄마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 세상을, 절실히 원했다.
하지만 남편의 빈자리에 허덕이는 나는
모든 게 버거웠다.
아빠를 잃은 슬픔 속에 지쳐 있는 딸,
원치 않던 삶의 환경,
이제부터 감당해야 하는 현실.
나는 그 모든 짐을
일터로 짊어지고 갔다.
그곳에는 가족이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기대어
숨을 돌리고,
공허함을 메우려 애썼다.
누구도 대신해서는 안 될 자리였지만,
막막한 고립과 소외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어떤 몸부림을 쳐야
나의 어둠이, 비참함과 설움이 가실까.
어떻게 해야
이 감정의 폭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넘치는 관심을 바랐지만
부담이 되고 싶진 않았다.
두려웠다.
한없이 번지는 갈망이
나를 잠식할까,
그 마음이 번져
곁의 사람들을 지치게 할까
겁이 났다.
마침내,
그 두려움은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선명하게,
거세게.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표정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손을 휘저어?”
“누나는, 장사도 안 되는데 문 앞에 앉아서 뭐 하는 거야?”
“너는 돈밖에 모르지?
어쩜 남보다 더하니?
네 그 매정함에 내가 얼마나 상처받고 참담한지 알아?”
“안 그래도 생각할 것도 많고 복잡한데, 왜 그래?”
“너랑은 더 이상 일 못하겠어.”
“그래서, 나간다고? 확실히 말해. 사람 구해야 돼.”
“끝까지…”
“누나가 나간다고 했잖아.”
그 두려움은 결국
남동생과의 다툼으로 번졌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처만 주고받았다.
싸움이 끝나자
가슴 한편이 저릿했다.
숨겨둔 외로움이
그제야 새어 나왔다.
그 틈으로
상실의 슬픔이 스며들었다.
감정들이 뒤엉켜
나를 삼켰고,
이 모든 감정에 맞서기엔
나조차 내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사라져 버렸으면 했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려는 순간,
나를 버티게 해 준 딸이 떠올랐다.
반드시 지켜내야 할
소중한 나의 딸.
그리고,
나의 슬픔에 더 슬퍼할
그 사람.
더는 이 생각에 잡혀 있으면 안 됐다.
빠져나오지 못하기 전에
스스로 걸어 나와야 했다.
숨을 고르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앞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 어둠 너머에
아직 내 몫의 하루가 남아 있었다.
힘겹게 그 길을 뚫고 나오자
고요가 나를 감쌌다.
어쩌면,
모든 게 예견된 순서였는지도 모른다.
떠남은,
그렇게 천천히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