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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Jan 05. 2022

백종원 레시피에도 없는 '치킨국'

아이들의 건강과 입맛을 잡은 요알못 엄마의 꼼수요리 

조물주가 나를 만들 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깜빡하고 넣지 않은 것이 많다. 계산하는 능력, 길 찾는 법, 기계를 조작하는 법 등 많은 것을 빼먹었는데, 그중에서도 '요리 실력'은 아예 넣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 요리라는 말만 나와도 숨이 답답하고 머릿속이 캄캄해지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이런 내가 15년간, 식구들의 밥을 책임져 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자 한편으로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맛보다 거의 때우기 식으로 차려내다 보니 먹는 즐거움을 제공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얼마 전부터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데 결국 답답한 놈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남편에게 주방을 점령당한 나는 후련해진 것도 잠시, 티끌만큼의 섭섭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유는 아이들이 남편의 요리에 너무 티나게 열광했기 때문이다. 그간 내가 해줬던 건 뭐였을까 싶을 정도로 내 요리엔 무반응이었던 아이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뒤늦게 요리 열정을 불태워 아이들을 열광케 할 음식을 개발하거나 노력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집을 떠나면 엄마의 손맛 같은 게 그리워질 텐데, 우리 집 아이들이 떠올릴 엄마의 손맛이란 게 비비O 미역국과 라면이라면 그건 또 슬프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나만의 필살기 요리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완성된 치킨국  겨울에 뜨끈한 치킨국 한그릇이면 게임 끝!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들을 떠올려 보았다. 다섯 손가락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란 프라이, 김밥 정도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엄마 요리 중에 가장 맛있는 게 뭐야?"

"......"


수학 답을 구할 때보다 신중하고 어려운 표정이었다. 역시나 하고... 풀이 죽으려 할 때쯤 아들 녀석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치킨국!"


딸아이도 번뜩이는 눈으로 맞장구를 쳤다.


"아 맞다! 엄마 치킨국 진짜 맛있어."


치킨 국?! 그래, 그게 있었지! 세상에 유일무이, 어디서도 팔지 않고 백종원 레시피에도 없는 요리. 3분 카레보다 간단하고 영양학적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작명도 내가 한 나만의 특급 레시피.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졌다. 


치킨국의 정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삼계탕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삼계탕의 닭가슴살만 발라먹는 아이들을 보고 아예 닭가슴살만 넣고 폭 고아볼까? 해서 시도해본 음식인데, 성공까지 해버렸다.


이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라면보다 쉬운 요리법이다.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일일이 찾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간단 레시피라고 해놓고 간단하지 않았던 레시피들에 속았던 나같은 이들을 위해 나만의 '초초초간단' 레시피를 공개한다.


▲ 초초초초초간단 치킨국 만들기 닭가슴살+마늘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먼저 냄비에 물을 넉넉히 받고 시중에 파는 닭가슴살을 넣는다. 거기에 마늘을 잔뜩 넣고 팔팔 끓인다. 이후엔 뭉근하게 끓이다가 물이 2/3 쯤으로 줄어들면 소금으로 간하고 끝.


뭐가 더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두시라. 이게 정말 끝이다. 나름 팁이 있다면 마늘을 많이 넣는 것. 또 집에 남는 파와 양파, 버섯 같은 재료가 있다면 같이 넣어도 좋다. 물론 안 넣어도 좋다. 


대충 만든 듯해도 맛은 대충이 아니다. 삼계탕보다 녹진한 닭육수 맛이 일품이다. 지방이 거의 없어 담백하고, 첨가물이 일체 들어가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아주 훌륭한 건강식이다.


이 요리의 강점은 저노동고효율 음식이라는 점이다. 그저 재료를 넣고 맛이 우러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양념도 소금간 하나로 충분하고 다른 반찬도 필요치 않다. 내가 개발해놓고 내가 놀란 요리다.


치킨국이 빛을 발할 때는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다. 감기가 올랑 말랑, 콧물이 날랑말랑 하기 직전. 뽀얗게 우러난 치킨국 한 접시에 밥 한 공기를 말아 잘 익은 김치를 쭉 찢어 올린다. 후후 불어 입 안에 넣어 오물우물 삼키면 오장육부가 뜨끈해지면서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렇게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나면 이내 감기 증세는 저멀리 도망가 버리고 만다.


서양에선 겨울이면 뭉근하게 끓인 스튜를 내놓는다. 나의 치킨국은 그에 대적할 최고의 겨울 음식이라고 자부한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독립을 해서 사회생활에 지쳐 몸이 허해지거나 찬바람에 코가 빨개질 때쯤, 이 요리를 떠올려 주지 않을까? 딴 집엔 없는 엄마의 치트키! 치킨국을 말이다. 그때가 되면 뭉근하게 오래 끓이는 게 유일한 비법인 치킨국처럼 나도 아이들을 뭉근히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설마...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빠가 만든 집밥부터 찾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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