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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Jun 16. 2020

니가 왜 강남콩에서 나와

의심을 버리고 확신을 얻는 방법

 한 달 전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강낭콩 몇 알을 받아왔다. 4학년 과학 교과 과정에 있는 식물 관찰 과제였다. 과제물 안내서에는 콩을 심고 서서히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는 설레하며 정성껏 강낭콩을 화분에 심었다.


"엄마, 강낭콩 열리면 엄마 밥 지을 때 넣어 먹어. 내가 주렁주렁 열리게 해 줄게."


아이는 마치 전래동화에 나오는 금 열매라도 상상하듯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속으로 '쉽진 않을 텐데...'라는 말을 삼키며 난 그저 웃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쉽지 않을 거라고. 이 작은 화분에서 열매를 맺긴 힘들 거라고.


그동안 수많은 화초를 키워봤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거나 다들 말라 죽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꽃을 피워본 성공 이력이 없었다. 그런데 씨앗부터 시작해 열매를 맺게 하라는 이 미션이 과연 성공할까 싶었다.


아이는 이런 내 마음과 상관없이 화분에 물을 주고 햇볕에 내놓는 정성을 들였다. 며칠이 지나자 초록 새싹이 빼꼼히 목을 내밀었다. 아이는 너무 신기하다며 호들갑이었다. 나는 '오래 가진 못할 거야'라며 심드렁했다. 오히려 아이가 기대하면 할수록 걱정이 됐다. 꽃도 피지 못하고 죽으면 크게 실망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강낭콩 싹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곧 줄기가 길게 뻗고 그 옆으로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아이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마음이 달라졌다. 예상과는 다른 성과를 보이는 기특한 화분을 보며 되려 내가 더 화분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OO아, 어서 와봐. 봉우리가 졌어. 곧 꽃이 피려나 봐."

"줄기가 너무 길게 뻗어서 부러질 것 같아. 아무래도 지지대를 만들어야겠지?"


일어나면 가장 먼저 화분에 물을 주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놓아두었다. 그러길 며칠 후 나는 잎사귀 뒤에 길쭉이 맺혀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이럴 수가! 강낭콩 열매였다. 그 순간의 감격이란. 온 가족들을 불러 호들갑을 떨었다.


"대박! 진짜 열매가 맺혔네, 얘들아, 여보, 어서와 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씨앗을 심고 줄기가 자라고 열매가 맺히는 일... 그런데 나는 왜 계속 의심했을까? '에이, 그거 안 돼', '옛날에 해봤는데 안 될걸?' 이런 식으로 내 안의 의심을 정당화해왔다.


아니, 오히려 그편이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열매 맺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어서 미리 결론을 내려버린 것일지도... 야트막한 경험을 토대로 시작도 전에 결론을 내 버렸던 나 자신이 무지렁이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겐 매번 '도전해라', '두려워 마라', '반드시 된다' 식의 도전 의식을 가르치면서 왜 나 스스로는 '과연 될까?' '힘들 텐데...'라는 의심부터 하게 된 걸까? 강낭콩 씨앗이 열매를 맺는 당연한 과정도 이렇게 의심했는데 내 안의 수많은 꿈의 씨앗들은 얼마나 많이 의심해왔을까?


지금껏 꺼내보지도 못했을 내 안의 씨앗들을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심어 봐야겠다. 열심히 노력을 기하면 반드시 꽃이 핀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혹여 꽃 피우고 열매 맺지 못한대도, 아직 여분의 씨앗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염두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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