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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Mar 21. 2022

나의 봄은 아인슈페너로 시작됩니다.

나는 단 맛을 싫어한다. 케이크, 빵, 사탕, 초콜릿, 과자... 웬만해선 단 음식이 당기지 않는다. 커피도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라테, 카푸치노, 프라푸치노는 영 내 취향은 아니다. 음료도 아무 맛 첨가되지 않은 탄산수를 좋아한다. 


어디 입맛뿐이겠는가. 인생 자체가 달달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빠야~' 같은 달달한 경상도 여인의 애교를 기대했다는 남편은 나의 무미건조하고 뻣뻣한 성격에 좀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내게 달달함을 기대했다는 남편에게 나는 더 당황했다. 

이런 내게도 달달함이 당기는 순간이 있다. 바로, 봄... 희한도 하지. 늘 아메리카노만 먹는 나도 봄이 되면 그렇게 아인슈페너가 당긴다. 나의 봄 신호는 아인슈페너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인슈페너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어 희석한 뒤 휘핑크림을 얹은 커피다. 커피잔 위로 불룩 올라온 휘핑크림을 입을 대면 마치 실크를 입에 대는 듯한 부드러움이 특징적이다. 카푸치노랑 비슷하지만 그 거품의 농도가 더 크리미하고 쫀득해 묵직한 달콤함이 느껴진다. 


아인슈페너를 시작으로 평소엔 거들떠도 안 보던 단 맛이 봄이 되면 자꾸만 생각난다. 초콜릿 중에서도 꽤 당도가 높은 스틱형 에너지바를 사서 우그적 우그적 씹기도 하고 아이들이 먹다 남긴 사탕이나 젤리를 몰래 빼먹다 걸려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크림이 잔뜩 들어간 도넛이 먹고 싶어 번거로운 외출을 강행하기도 하며, 퇴근하는 남편에게 조각 케이크를 사 오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봄이 오면 당기는 갑분 단맛. 대체 이 봄과 달콤함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살찌는 이유를 어떻게든 환경 탓으로 돌리려는 나의 핑계로 느껴지는가?(눈치가 빠르시군) 그치만 그 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을까? 분명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봄과 달콤함은 오랜 시간 세트로 여겨져 왔다. 봄노래를 한 번 떠올려보자. 내 음악 플레이리스트엔 '달달한 봄 음악'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전주만 들어도 녹아내릴 것 같은 음색과 리듬의 곡을 '달달한 봄 음악'이라고 칭한다.


달콤한 향수의 홍보 문구를 '봄을 닮은 향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 봄의 맛이라며 내놓은 휘황 찬란 달콤한 디저트들은 또 어떻고. 어찌됐든 '달달한 겨울'보다 '달달한 봄'이 더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단 맛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달콤한 사탕을 물리는 것인데, 단 맛을 싫어하는 아이가 없는 것은 바로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살아가는 기본 에너지원이 단맛에서 나와서 그런 것이라고 어느 책에선가 명시돼 있었다. 한마디로 단 맛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봄은 생명과 가장 맞닿은 계절이다. 잡초 사이에 가려져 있던 길거리 꽃도, 말라버린 화분의 화초도, 마른 나뭇가지의 나뭇잎들도... 봄이 되면 슬그머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 살아있어요'라고 말을 건넨다. 


이 같은 식물들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따뜻한 공기, 비, 바람이라면, 우리 인간들에겐 혀로 느껴지는 단맛이 큰 생존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생명이 움트기 위해 저마다의 용을 쓰는 이 봄에는 더더욱. 


마흔이 훌쩍 지나 더 이상 자랄 게 없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움트는 일보다 저물어가는 게 더 가까운 나이라고 여겨왔다. 한데 나는 아직도 자라는 중이라는 것을, 아직도 살아가는 중이라는 것을, 이 봄, 달달함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신체적 반응으로 새삼 상기시켜본다.


저물어가는 인생이란 없다. 인간도 풀과 나무처럼 계속 자라난다. 비록 신체적 성장은 멈췄을지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덤벼볼 도전이 있고, 해내야 하는 일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성장해 나간다. 어릴 때 단맛을 좋아하다가 어른이 되면 시큰둥해지는 이유 역시 '다 컸다'는 주변의 말들과 자신 역시 그렇다고 단정지은 탓일지도 모른다.


이 봄, 단 것이 당긴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아, 내가 (내 꿈이, 내 마음이) 자라기 위해 필요한 양분을 섭취할 때구나'라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왠지 하얀 설탕을 잔뜩 묻은 연갈색 꽈배기가 당긴다. 한 입 '왕' 베어 물면 입술 가득 설탕이 묻어 버리는 꽈배기, 밀가루 빵의 고소함을 만끽하다 입술에 묻은 설탕을 혀로 날름날름 빨아먹을 때 느껴지는 환희의 맛.


아웅, 못 참겠다. 살찔까 두려운 마음은 잠시 접고 달달한 꽈배기를 구하러 나서야겠다. 이것은 살찔 징조가 아니라 봄에 걸맞은 내 몸의 양분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므로. 참고로 봄에 먹는 단 맛은 0k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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