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요즘 '추앙', '추앙' 하길래 사람들이 추앙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았다. 옛날엔 남들이 좋다는 건 이상하게 보기 싫은 마음이었는데 나이가 들었나, 남들이 좋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찾아보았다.
감히 내가 평가할 드라마가 아니었다. 어느 지점부터는 내 주제를 깨닫고 평가는 관둔 채 온전히 드라마에 몰입했다. 역시 '추앙'이 드라마의 핵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추앙이라니. 나를 추앙하라니. 오글대는 이 대사를 들은 내 귀를 박박 씻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어쩐지 후반부로 갈수록 이 추앙이라는 단어가 심장에 콕콕 박혀 누군가를 추앙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가 되었다.
▲ JTBC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 JTBC
추앙.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 재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 아니 그보다 더 윗 단계의 감정. 드라마 속 추앙 남녀 염미정과 구씨는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과거가 어땠는지, 현재가 어떤지도 개의치 않고 서로를 추앙해 나간다.
'왜 그랬냐?' '하지 마라', 훈수 두지 않고 참견하지 않는다. 갑자기 떠난다는 상대에게 화를 내긴커녕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숙취로 고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의미를 곱씹다가 불현듯 내가 추앙해야 할 대상을 떠올렸다. 바로 내 자식들이었다. 추앙의 의미를 자식에게 대입해 보니 그 풀기 어렵다는 자식 문제를 깔끔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요즘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식이다. 사춘기에 들어섰는지, 말도 잘 듣지 않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린다. 이끄는 대로 잘 따라오지도 않고, 반항의 기미도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짜증도 나고 화도 난다. 다 너를 위하고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상처를 주고 또 받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이 불편한 감정은 사랑이 추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해서 드는 마음이 아닐까? 내 마음대로 하려는 감정, 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감정, 남들에게 그럴싸해 보이고 싶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생채기를 내는 것이다.
추앙하라는 말에는 불순물이 끼어들 틈이 없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충만하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존중하는 마음... 의심, 불안, 질투, 이런 것 따윈 버리고 무조건 적으로 채우고, 채우고, 또 채워야 한다.
사회의 모든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가 기본 바탕이다. 남녀의 사랑도 부모에 대한 사랑도 추앙으로 발전하긴 어렵다. 하지만 자식은 예외다. 그 사랑의 본질이 추앙이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러러 받들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릴 때, 내가 가졌던 감정은 추앙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래서 불만이야', '니가 그럼 그렇지', '태도 좀 고쳤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믿어준 적도, 절대적으로 응원한 적도 드물다. 마음을 채워주긴커녕, 내 욕심의 펌프로, 있던 사랑도 도로 퍼내고 있었다. 육아서를 백 날 보고, 오은영 매직을 매일 시청해도 내가 아이를 추앙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나의 해방일지 ⓒ jtbc
인간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재밌는 게 하나도 없다던 드라마 속 주인공 남녀가 다시금 세상 속에서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추앙의 힘 때문이었다. 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술을 끊으라고, 성실히 살라고, 사람들 틈에 끼라고, 섣불리 충고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전적으로 응원해 줄 때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최종회에서 여 주인공이 그런다. 자신이 사랑스러워 죽겠다고. 마음에 사랑밖에 없다고.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다고. 내가 자식에게 만들어 줄 것은 스펙이 아니라, 우수한 성적이 아니라, 바로 이것인 것 같다.
요즘 부쩍 주눅 들고, 짜증으로 채워진 것 같은 아들 딸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충만감이 넘쳐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
고로, 나는 자식을 추앙할 것이다. 말을 듣지 않아도, 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아도 나는 추앙할 것이다. 언젠가 나를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숙취로 고생하지 않길 바랄 것이다. 아~ 벌써부터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난 너희를 추앙해!!!"
"... 어? 우릴 추방한다고? 안돼~ 엄마~!!!"
휴우, 사랑으론 안 된다. 추앙이어야 한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 / 최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