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다 말세."
우리 할머니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오는 수영복 심사를 볼 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시대를 살아왔고 나름 X세대인 만큼 파격에 익숙하다고 자부해 왔는데, 요즘 OTT콘텐츠와 유튜브를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할머니처럼 말하게 된다. "말세다 말세."
특히 넷플릭스 <성+인물>, 유튜브 <노빠꾸탁재훈>, 유튜브 <나몰라패밀리 핫쇼> 등 성인을 대상으로 한 웹 예능들은 선을 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위가 높고 자극적이다.
'선 넘는' 웹 예능들
▲ 넷플릭스 <성+인물> ⓒ 넷플릭스
성에 대한 솔직한 담론이라 하기엔 이미 도를 넘어선 듯하다. 보기만 해도 낯 뜨거워지는 낚시형 섬네일은 기본. 아예 AV배우를 게스트로 초대해 성적 행위가 연상되는 인터뷰를 하거나 여성을 대상화하는 듯 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은 파격인가? 금기인가? 그런데 사실 내게 중요한 것은 파격이냐 금기냐가 아니다.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중1 남아와 초5 여아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 '19금' 콘텐츠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연령제한 설정을 해둔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늬만이다. 교묘하게 접근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콘텐츠 세상 속에 내 아이가 안전할 곳은 없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브 <나몰라패밀리 핫쇼> 속 다나카를 보자. 다나카는 개그맨 김경욱이 만든 가상의 인물인데, 설정상 일본 유흥업소 호스트바 선수다. 그런데 다나카의 '지명한다' '꼬츠미남' '오이시꾸나레' 같은 유행어를 아이들도 흔하게 쓴다. 유튜브의 영향이 미치는 연령대가 어디까지인지 쉽게 확인할 있다는 방증이다.
유튜브의 속성상 터치 한 번이면 아무 제약 없이 해당 콘텐츠를 손쉽게 볼 수 있다. 넷플릭스 같은 OTT는 성인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순진한 사람. 선정적인 장면과 대사만 짜깁기 한 자극적인 짤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지뢰와도 같다.
요즘 엄마들은 호환마마보다 유튜브가 더 무섭다고 한다. 최근 많이 화제가 되었던 넷플릭스 <성+인물>에 출연한 일본 AV 배우들의 발언을 한 번 보라.
" AV가 성욕을 해소시켜 성범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 AV 촬영이 온전히 자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고 싶은 명품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번다."
제대로 된 검증과 근거 없이 AV산업을 옹호하는 듯 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며 오락적인 요소로만 비춘다. 실제로 일본 현지에서도 강제촬영, 미성년자 인권침해 등 성 착취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됐으며 지난해 6월 'AV출연 피해방지 구제법안'이 통과됐을 정도다. 그런데 해당 프로그램들은 예능이라는 핑계를 대며 호기심과 재미만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성교육 수요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청소년의 22.5%는 SNS, 유튜브 등을 통해 '성 지식과 정보를 얻었다'라고 답했다. 지금 성인 웹 예능에서 비치고 있는 '성'은 과연 어느 수준의 지식과 정보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왜곡된 성의식의 문제점
▲ 성인 콘텐츠 노출은 미성숙한 청소년 및 아동들에게 왜곡된 성의식과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할 수 있다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입 모아 말한다. ⓒ pixabay
성인 콘텐츠 노출은 미성숙한 청소년 및 아동들에게 왜곡된 성의식과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할 수 있다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입 모아 말한다.
또 OTT와 유튜브의 성행으로 성인물 차단을 막기는 불가능하니 아이들의 제대로 된 성교육과 비판적으로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다양한 매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사실 성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게 한 가정에서, 내 아이만 단도리 한다고 되는 일일까.
이런 말 말고, 좀 더 실효성 있는, 피부에 와 닿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콘텐츠의 심의 기준 강화 및 쇼츠, 릴스 같은 숏 폼에 대한 접근성 또한 세밀한 연령 기준을 두어야 한다.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비를 피할 순 없겠지만 내 아이에게 얇은 우비 하나쯤은 입혀줘야 안심이 될 것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이 작은 지면을 빌어 하소연해 본다.
편집: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