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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Sep 08. 2020

우리 부부의 금실 비결은 '00'입니다.


“오늘 애들 빨리 재워”

“왜?”  

“있잖아, 그거”

“어웅~안되는데... 아흥 후훗”


말로는 안된다고 했지만 나도 땡기긴 했다. 뭐가? 바로 엽떡 말이다.


우리 부부는 종종 밤에 애들 몰래 엽떡을 시켜먹는다. 그 스릴과 긴장은 여느 스릴러 영화에 비할바가 아니다. 배달원의 초인종 소리에 어렵사리 세운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


방심은 금물! 만에 하나 아이들이 깬다면 초롱해진 눈으로 자기도 먹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물론, 어찌어찌 잘 설득해 다시 재운다 해도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 들여야 할 것이다. 어렵사리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면 어흑,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  팅팅 불어 터진 엽떡과 마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한 방에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편과 나의 완벽한 호흡이 필요하다.  


'애들 방, 미션 성공! 그쪽 상황은 어떠한가 오바. 아직 미션 수행 중.'


현관 앞에 보초 서있는 남편과의 보이지 않는 수신호가 긴박감을 더한다.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우리 층에서 열리면 누가 볼세라 얼른 물건을 받아 들고 살곰히 문을 닫는다. 그야말로 첩보작전과 맞먹는 수준이다.


꽁꽁 묶인 비닐을 풀어 엽떡을 상 위에 올리고 술을 꺼내 세팅을 마치면 양팔을 벌리고 빨래 끝~! 하고 외치는 것보다 더 짜릿한 육아 끝~! 을 외치는 상쾌한 마음이 든다.  


육아 덤불에서 자빠지고 뒹굴다 안락한 오두막을 만난 듯한 기분. 아이들이 뒤척일까 봐 노란 불빛의 스탠드를 켜 놓은 것은 왠지 달밤의 비밀회동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볼륨을 최대한 낮춘 채 티브이를 켠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엽떡을 하나 집어 올린다. 쭈~우욱~ 하고 딸려오는 치즈는 마치 행복의 농축액 같다. 떡을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대면 매운맛이 바로 확 올라와 맥주를 사정없이 들이켜게 된다. 아차! ‘여보, 짠!’ 하고 잔을 부딪치면 사감 몰래 기숙사에 놀러 온 친구와의 일탈처럼 짜릿하고 재미지다.


그렇게 우리는 매운맛에 못 이겨 ‘씁씁’ 거리며 서로의 하루를 털어낸다. 남편이 당한 부당한 일에 나쁜 놈, 몹쓸 놈, 시베리아 허스키 같은 놈, 실 컷 욕을 해준다. 남편 역시 나의 일과를 물어오면 나는 날파리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온 일까지 시시콜콜 털어놓는다.


나는 확언컨대 이것이 우리 부부의 결혼 만족감과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꿈나라로 보내고 우리만의 꿈나라를 만들어가는 순간.


미혼들이여 명심하라. 결혼 생활이란 이토록 시시하고 별거 아닌 것에서 유의미함을 찾아내는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것을.


결혼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의 완성판이라 믿고 결혼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어느순간 갑작스런 조연(시댁, 친정, 자식)들의 활약이 드러나면서 부터 장르가 바뀌어 버린다. 로맨스인 줄 알고 설렘 안고 봤는데 보다 보니 참혹한 치정 스릴러였던 영화처럼... 나중엔 환불을 요구하고픈 충동마저 든다. 그러나 뚜둥! 환불 불가!!!그것이 바로 결혼이라는 시나리오의 반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와 남주를 바꿀 수도 없고, 조연을 없앨 수도 없다. 그래서 난 인생이라는 노트 위에 새로운 결혼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인 남편과 나의 비중을 확 높여서 말이다.   


나는 야밤에 엽떡 먹는 이 순간이 우리 둘의 이야기 같아서 좋다. 자식은 잠깐 빠져줘야 한다. 나의 러브 스토리가 진행되는 중이니까 말이다.


남편은 20대 초반, 이혼 직전의 부부들을 다시 이어주는 프로그램의 피디였다. 눈만 마주쳐도 싸우는 부부의 가정집에 며칠간 머물며 그들의 삶을 촬영하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었는데 그때 남편은 결혼에 대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불화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불화의 씨앗은 거진 비슷한 모습이라고 했다.  


씨앗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화부족, 또 하나는 스킨십 결여란다. 나중에 이혼사유에 흔히 쓰이는 성격차이라는 것이 이 두 씨앗이 두루뭉술하게 변종된 결과물이라고 했다. 십 년이 넘게 결혼 생활을 해보니 웬만큼 수긍되는 이야기였다.


당시 총각이었던 남편은 지옥 같은 촬영 환경이었다고 회상했지만, 인생은 역시 알 수가 없는 법! 그 지옥길이 결혼 생활의 꽃길로 인도하는 지침서였는지 그때의 남편은 진정코 몰랐을 것이다.


당시 경험 때문인지 결혼생활 내내 남편은 내 심경을 헤아리는 데 주력한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함께 얘기하고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그 마음이 느껴지니 나도 웬만한 일에는 섭섭해 하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생각보다 대화를 하지 않는 부부들이 많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남동생네부터가 그렇다. 동생네 가족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올케가 울먹이며 말했다.

 

“오빠는 집에 오면 말도 안 하고 티브이만 보다 자요”  


 나는 동생을 몰아붙였다. 그러자 동생이 한 말이 이 거였다.


“마음은 아닌 거 알잖아.” - 어떻게 알아 이놈아.
“힘든 거 얘기하면 와이프도 같이 힘들까봐” – 입 닫고 있는게 백배는 더 힘들다.  

“할 말이 별로 없어”- 똥 싼 얘기라도 해.

“그래도 애들 얘긴 많이 하잖아” -너희 둘의 이야기를 하라고 이 좌식아!!!


부부간의 말문이 닫히면 자연스레 마음의 문도 닫히게 마련이다. 부부끼리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냐라고 묻는다면 부부라서 당연히 할 말이 많아야 한다고 되받아 치겠다. 사회이슈, 노후 문제, 기후 환경, 하다 못해 오늘도 성공 못한 변비 이야기라도 하면 될 일이다. 거기에 배우자가 좋아하는 배달음식까지 딱 세팅해 놓으면, 없던 금실도 되살아 난다고 나는 장담한다.


그리고 이때 아이들 얘긴 살짝 빼놓자. 아이는 내 결혼생활의 주인공이 아니다. 말 그대로 조연. 아주 비중 있는 조연이지만 엄연히 조연의 역할에만 머물러야 한다. 조연이 주연의 역할로 넘어오면 나중에 이야기가 막장으로 갈 수 있다는 것만 잊지 말자.  


이혼 직전의 부부가 상담센터에 가면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질문과 적극적인 경청을 기반으로 문제를 풀어간다고 한다. 굳이 상담센터에 가서 비싼 돈 내고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엽떡 금실 소생 작전을 권장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물어봐주는 것. 그것이 부부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할 수 있는 비법 중에 명비법일 것이다.  


* 엽떡 홍보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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