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라니!
마흔 살이라니!
마흔 살이 되던 날, 나는 브릿짓 존스의 일기에 나오는 르네 젤위거처럼 울부짖었다.
나는 내가 마흔 살이 될지 몰랐다. 이런 오만방자한 말이 어딨을까 싶지만 어렴풋이 내가 짐작해온 어른 궤도의 제일 끝 점은 39세 까지였다.
40대는 어른의 나이라기보다 부모의 나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엄마 아빠의 나이를 떠올리면 40대에 멈춰있다. 실상은 내가 그 부모가 돼 있고 나의 부모는 70대 노년의 삶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말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마흔 살의 삶은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의외로 편안했다.
이미 살아온 날들에 대한 검증과 축적된 데이터 덕분에 난 더 이상 세상을 향해 해명 거리를 찾 듯 발발 대지 않아도 됐다.
싫은 사람에게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됐고, '절대!' 라는 말을 예전보다 덜 사용하게 됐다. 화를 내기 보다 이해를
먼저 찾았고 상대가 자꾸만 측은해졌다.
누가 일러준 것도, 노력한 것도 아닌 그저 마흔이라는 나이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나는 점점 더 내 나이가 좋아졌다.
뭐가 뭔지 모르던 10대를 지나
치열하게 존버 했던 20대를 지나
흩어지는 자아를 붙들고 괴로워했던 30대를 지나
다소 긴장이 풀린 마흔 살을 살고 있다.
그 사이 나는 변하지 않은 듯, 많이 변해 있었다.
그것은 외모의 변화이기도 하고 심경의 변화이기도 하다.
전자기기로 치면 한 번 업데이트된 상태라고나 할까?
머릿속 버그로 인해 연신 버벅대던 시스템이 드디어, 마침내, 잘, 정리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질척이기만 하던 인간관계에서
삐긋대던 남편과의 사이에서
나라는 알 수 없는 인간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은 잰 체할 수 있는 짬밥과 베포가 생겼다.
더이상 삶을 향해 징징대고 싶지 않아졌다.
아기들에겐 '백일의 기적'이란 게 있다. 밤 낮 없이 울어 대고 까탈스럽던 아이도 백 일을 기점으로 온순해진다는 마법의 시간. 나는 그 기적 같은 시간을 마흔 짤에 다시 경험하고 있다.
마흔 살이 되어서야 어설프게나마 얻은 깨달음과 지혜를 공유하고 싶어 글들을 썼다.
누군가에겐 다가올,
누군가에겐 지나갔을,
누군가는 겪고 있을 마흔 짤의 기적!
그 기적의 순간을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