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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Jul 04. 2020

당신 인생은 따박따박 계산돼서 좋겠수

내 인생, 증명받고 싶다   


"당신 인생은 따박따박 계산돼서 좋겠수”      


드라마, (잘 모르지만) 가족입니다에서 평생 전업으로 산 원미경이 남편의 통장을 보며 한 혼잣말이다. 따박따박 계산되는 삶, 통장에 찍혀있는 노동의 증거, 그런 것이 부럽다는 말투다.   

   

나도 그렇다. 돌이켜보면 주부의 삶은 딱히 남는 게 없다. 하루 종일 쓸고 닦고 입히고 재우고 해 봐도 자식은 시간이 키운 것, 밥은 남편이 번 돈으로 지은 것, 집안 노동은 응당 그래야 하는 것, 어느 순간 그렇게 돼 버린다. 억울함도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 자신조차도 대가 없는 삶에 순응해버린다.      


따박따박 계산되는 삶, 나도 완전 부럽다.      


얼마 전, 내가 쓴 글이 지원 사업에 당선돼 적게나마 당선금을 받았다. 중간중간 알바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꽤 간만에 벌어본 돈이었다. 돈의 액수와는 별개로 상당히 자존감이 높아졌다. 내돈내산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코딱지만 한 돈이라도 벌긴 벌었다며 어깨가 쫙쫙 펴지는 게 역시 돈벌이는 경제적인 문제보다 심리적인 문제에 더 가깝다.      


이 금쪽같은 돈으로 뭘 하면 좋을지 들떠서 남편에게 물었다. 대뜸 “이 달 대출금 갚는데 써야지”라고 하는 통에 김이 팍 새 버렸다. 어차피 그 돈이 그 돈이긴 하지만. 이렇게 내 손에 한 번 쥐어보지도 못하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허무했다.    

  

손에 잡히는 뭔가가 갖고 싶어. 증명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해.      


갖고 싶었던 것 중에 생필품에 밀려 사지 못했던 물건들을 떠올렸다. 그래! 스피커. 공간을 꽉 채우는 울림이 있는 좋은 음질의 스피커. 한동안 정말 사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있었다. 떠올리니 당장 갖지 않고는 못배길만큼 욕심이 났다.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그 길로 당장 해당 모델의 스피커를 사 들고 왔다. 박스에 담긴 스피커를 꺼내기 위해

포장된 종이와 스티로폼을 하나씩 벗겨내자 스피커의 형체가 손에 잡혔다 연신 쓰담쓰담하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걸로 내가 번 돈이 증명됐다’ 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선명해졌다.     


김연수 신작 '일곱 해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그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시를 쓰고, 불행도 감수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뭐든 증명돼야 하는 것이다. 사랑도 우정도 돈도. 그래야 명확해진다. 그래야 나아갈 힘이 생긴다 


지난 시간은 내게 늘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들 천지였다. 허공에 대고 보이지 않는 뭔가를 잡으려고 폴짝폴짝 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그렇게 불안했고 허무했나 보다 아무리 폴짝 대도 손에 쥐어진 게 없었으니 말이다.      


이제 증명되는 것을 옆에 두려 한다. 빈 노트북에 채워진 내 글,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의 단단한 살,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하나 둘 그런 실체들을 곁에 두면 나의 존재 역시 증명이 될 것만 같다.  

    



그러다보면 이내 내 마음의 통장에는 확신, 분명, 믿음 이런 것들이 월급보다 더 많은 이자를 달고 따박 따박 들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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