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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Sep 15. 2020

넌, 죽음 계획이 다 있구나.

한평생 계획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인생을 연주곡에 비유한다면 잘 짜인 오케스트라보단 즉흥적인 재즈 연주가 더 잘 어울릴 것이다


둥둥... 두두둥... 일 시작!

빠바바밤.. 산책 들어오고.

따라라란...이 느낌엔 여행타임~!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계획은 너무 복잡하고, 실행하기엔 유혹이 너무 많다. 이를테면. 날씨나 기분 같은 것...      


하늘이 맑거나, 비가 오거나, 따뜻한 바람이 불면 당장의 계획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여기 앉아서 키보드나 두드릴 일인가 싶어 곧장 자연이 주는 공짜 즐거움을 누리러 나선다.


때론 기분이 너무 좋아서

때론 기분이 너무 나빠서

지금 당장 보이는 눈앞의 물형보다 보이지 않는 뭔가에 홀려 계획을 흩트리게 된다.       


무계획의 아이콘으로 살아온 지 40여 년.


앞으로도 크게 계획 같은 거 세우지 않고 하루하루 날씨 따라, 기분 따라 살아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그런 내가 얼마 전 '나도 계획이란 걸 세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등 뒤로 큰 아이가 물어왔다.


“ 엄마, 내가 마흔 살 되면 엄마는 몇 살이야?”

“ 일흔 살”

“ 그럼 내가 일흔 살 되면”

“ 그땐 엄만 죽고 없을 걸? ”      

" ... "


갑분싸! 분위기가 요상해서 뒤를 돌아봤더니 두 놈 모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왜 그래?”라고 하자, 갑자기 "으앙~"하고 눈물을 쏟는다. 아무리 수습하려 해도 요지부동이다. 고무장갑에 거품을 왕창 묻힌 채 엉엉 우는 애들을 달랬다.


"으와아아앙 거짓말! 엄마는 안죽을거야!!"


불사신이라고 할 걸 그랬나... ;; 한참을 내 허리춤에 매달려 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순간, 잊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떠올랐다. 한 때 아이를 낳고 내가 심각하게 걸린 병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갑자기 죽을까 병’. 난생처음 앓는 이 병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지하철도 못 타고 영화관도 못 갔다. 여기서 갇히면... 여기서 죽으면... 우리 애들은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평소에 거리낌 없이 하던 행동에도 극심히 몸을 사렸다.      


내가 죽은 뒤 남겨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렁거려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게 나만의 걱정병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아이를 낳고 이런 병을 앓는 엄마들이 많다고 해서 놀랐다.


이 병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서서히 나아졌지만 나를 끌어안고 우는 아이를 보니 또다시 그 두려움이 복기됐다.

죽는다는 것. 입 밖으로 내기도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언젠가는 나도, 그리고 모두가 겪을 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계획이란게 필요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죽을까병'의 원인은 아무런 준비없이 이별을 맞게 되는 대서 오는 불안함이다. 잘 짜여진 죽음 계획은 삶의 안정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할까?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책에 의하면 죽음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현직 의사로 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어떻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 있는지, 미리 공부하고 계획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난다면서 말이다.      


언젠가 흥미롭게 읽었던 한 기사가 떠올랐다. 말기 전립선 암을 앓고 있는 85세 김병국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그는 '생전 장례식' 을 열어 화제가 됐다. 그에게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죽고 나서의 장례식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살아있는 순간에 고마운 사람들을 초청해 추억을 회상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부고장은 초청장, 조문객은 초청객이라 칭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죽음 계획이었던 것이다.


김병국 할아버지의 장례식 초청장 / 출처 인사이트


와우~ 리스펙!!!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옷을 입고,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장례식이라니~!  그의 죽음 계획은 떠나는 사람, 남겨진 사람 모두에게 후회와 죄책감이 아닌 감동과 멋진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게 했다.  


내 손으로 죽음의 밑그림을 그리고 남은 이들이 내가 원하는 색으로 채색해 주는 것, 나도 그런 계획안을 갖고 싶다.


내가 세워본 계획안은 아래와 같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죽은 날을 기념하지 말 것. (제사 사양)

슬픔 상한제 도입 (일주일 만 슬퍼하라)

생일날, 내 자식 둘이 만나 가볍게 만나 차나 밥을 먹을 것 (며느리, 사위는 선택사항)  

손자손녀들에게 물려줄 책을 만들 것


이렇게 계획안을 써놓니 뭔가 맘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김병국 할아버지는 죽음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사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자고로 이사를 하려면 철저한 사전 계획이 필요한 법. 성공적인 마지막 이사를 위해 나도 멋진 죽음 계획을 꼼꼼히 세워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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