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불안 사이에서
새해 벽두지만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이렇다 할 동력이 생기질을 않는다. 여기에 곧 생리주기가 다가오면서 신경만 예민해진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데도, 이유 없는 짜증만 났다.
이유가 뭘까?
연휴에 쉬면서 읽을 책 3권을 빌렸다. 책은 기대보다 재미가 없었다. 덮어 놓고 잠이나 잤다. 한두 시간 정도 낮잠을 잤더니 정신이 몽롱해진다. 깨어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도통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뭘 열심히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의 불안감이 더 크다는 걸 깨닫는다. 목표가 있으면 지칠 순 있지만 다시 이겨낼 동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회복의 속도는 각기 다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달래고 북돋을 이유가 생긴다.
하지만 목표가 없는 삶은 무기력 그 자체다. 이 감정에 함몰되기 시작하면 오늘의 나처럼 소중한 시간을 아. 무. 것. 도 하지 않은 채 흘러 보내기 십상이다.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마음이라도 편하면 다행이다. 돌아오는 건 불안, 초조다. 나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의.
지난주 병풍 면접 이후 '탈락'확인 사살을 받았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이제 NEXT를 떠올리기에는 진이 빠진 상황이 됐다. 일종의 번아웃을 겪고 있는 걸까? 아님 그냥 단발적인 코로나블루인 걸까?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실은 하고 싶은 일들은 많은데 이를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부터 생각할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잠시 놓아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방대한 콘텐츠 더미 앞에서 결정장애가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투입 시간 대비 고퀄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 스크롤 바를 내린다. 그렇게 더 나은 콘텐츠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탐색만 하다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2018년 피트 데이비스라는 하버드대 학생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과거보다 너무 많은 선택지 속에 살면서 한 가지 일에 전념하지 못하게 됐다. 무엇에 몰두하지 못하는 경험은 결국 거기로부터 오는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없게 한다. "
하고 싶은 것, 이루고픈 것,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시대다. 현대 사회는 분명 우리에게 보다 많은 자유와,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어떤 행복이나, 기쁨 보람을 담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선택하지 않은 것들, 시도하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 혹은 부담이 커서 오는 불안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