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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Apr 01. 2022

그는 정말 물욕이 없을까?

어쩌면, 자기합리화

OO씨는 40대 후반 미혼녀다. 그는 성품이 곱고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는 타입이다. 여기에 화장기 없는 수수한얼굴과 옷차림. 화려하게 꾸미기를 즐기거나 허영이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최근에 그와 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야기 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물욕이 없어요"


솔직히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정말 그럴까?'라는 물음표를 떠올렸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실로 물욕이 없을 수 있을까?


 '없는 편'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쉬울까? 속세에서 벗어나 보겠다고 자처한 종교인들도 온갖 욕망 때문에 무너져버리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의심했다. 그의 말은 과연 진심일까? 일종의 자기 합리화 같은 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이 꽤 합리적인 의심이었다는 것은 얼마 전 밝혀졌다.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재테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최근 주변 지인들이 주식으로 짭짤하게 수입을 봤다는 이야기, 또 전 국민이 재테크에 뛰어드는 분위기 등에 편승해 동학개미가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투자 금액을 '버리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재미삼아한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결코 '재미'로 보이지 않았다. 오르고 내리는 차트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전전긍긍했다. 그는 그저 치킨 값 정도만 벌면 됐다며 하하하 웃었지만...


아뿔싸! 지난번 시시콜콜한 이야기 끝에 무심코 본심이 드러나버렸다. 그는 가방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쇼핑을 하고 싶다고. 자주는 안 하는데, 한 번 할 때 왕창 하는 편이라고.


별 생각 없이 듣다가 문득 떠올랐다.

'응? 물욕 없으시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물욕이 없다는 말'은 새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을. 조금 더 세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자기기만 같은 것이라는 걸 말이다.


어느 책에서 "물질에 대해 부정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일수록, 물질에 대한 욕망이 클 가능성이 높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는 물질적인 욕심을 다 채우고 살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게 아닐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물욕을 다 충족시키고 살지 못한다. 아주 일반적이다. 그렇다고해서 '되는대로 살래'라고 말하는사람은 소수다. 조금이라도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고, 배우고, 저축하고, 투자하고, 그리고 인정한다. 솔직하게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모든 사람이 물질만능주의라는 말이 아니다. 단연코 명예,사랑, 건강, 봉사, 성공, 가족 등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는 다양하며 이에대한 우선순위는 각개 다르다. 어느 가치에 중점을 두고 사느냐는 개인의 문제로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다. 감히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하는 건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 자체에서 '물질'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으니까.


물질에 대한 욕망이 적은 사람은 있다. 하지만 '적은 것'이지 결코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물욕은 인간의 본성이다. 맛있는 것을 보면 먹고싶고, 좋은 것을 보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도 시장경제주의는 따르고, 북한에도 암시장은 있지 않은가.


대체로 욕망이 적은 사람들의 경우는 삶의 우선순위가 돈이 아닌 경우다. 물질로는 감히 채워지지 않은 다른 것에 푹 빠지거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거나, 혹은 이미 물질적인 충만함을 겪어보아서 부질없음을 깨달은 경우 정도가 아닐까 한다.


결국 그의 '물욕 없음'은 결국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애써, 검소함으로 포장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가 자신의 '고독함'을 감추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함부로 판단하는 건 실례지만, 그는 은연중 내게 고독함을 많이 표현했다. 특히 결혼할 때를 놓친 것에 대한한탄이 깊었다. 분명 밝고 따뜻한 사람인데, 종종 대화를 하다 보면 이유 모를 공허와 쓸쓸함, 이따금씩은 얄팍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마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아라는 것,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자기의 본질은 발견했을 때 만족감을 주기 어렵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본질과 현상의 이원성을 발견하기 마련이고, 그 발견은 의외로 자아를 초라하게 만든다. 발견된 자아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다"


 - 나쓰메 소세키 <마음> - 


나는 그의 물욕이라는 이원성을 발견한 것 같은데 그도 느꼈을까? 뭐, 나라고 다를 것도 없다. 나도 나를 초라하게 만들 내 모습을 언제고 마주할 테다. 다만 그 본질이 쓸쓸하고 외롭더라도 애써 감추지는 말자고, 나는 작은 다짐을 했다.


기실, 이미 무언가를 감추며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음, 마음이란 발견하지 못한 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한번 들여다본 이상 나에게 무겁고도 준열한 질문을 던지는 윤리의 맨 얼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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