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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탄 Dec 20. 2017

[Column] 삶의 한 끗, 판 뒤집기!! - 1

[판 뒤집기, 자기개발, 자기계발]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가 있다.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님이 남이 되어서 아이 참 슬프다, 가 아니다. 바로 점 하나의 위력, 다시 말해 한 끝 차이로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흔하냐 흥하냐”의 차이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서 ‘판’이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사회적으로 ‘판’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은, 다양한 사회 문화적 이유가 있고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그중에 대부분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판’ 은 현재 상황과 현재의 틀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판을 깨는 것, 판을 뒤집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거나 현재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어떤 사건, 행동, 그런 사람의 등장을 뜻한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해석 말고, 우리의 삶에서, 교육하고 교육받는 우리 삷 에서의 판을 뒤집는 것은 무엇이고 왜 판을 뒤집는 것이 필요할까?

판이라는 말을 들으면 다들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래도 필자는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륙 이동설이라는 학설에서 사용하는 지각판과 해양 판을 지칭하는 단어로 인식된다. (배우고 익힌 것이 사람의 인식에 이렇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학설은 지구의 땅덩러이들과 바닷속 땅이 ‘판’의 형태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현재의 세계지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인 것, 초기의 지구가 판데아 하고 하는 원시 대륙으로 한 덩어리의 땅 이였다가 대륙이 이동해서 지금의 지도 모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판끼리 상호작용하고 만나고 떨어지는 과정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지형이 변하고 한다는 이론이다.


  사실 판이라는 것이 사회 문화적 틀을 의미하는 것이던, 땅을 의미하는 것이던 사실 상관없이, 지금 당장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 내가, 나는 지금 어떤 판 위에 서 있는가 이다. 지금 나의 발판이 무엇인가 말이다. 이제부터 함께 ‘나의 판’을 그려 볼 것이다. 하나씩 떠올려 보다. 나의 가정적, 사회적 배경, 나의 재능과 능력, 내가 배운 것, 잘 하는 것, 나의 신체적 조건과 경제력, 직업과 특기 취미와 습관, 선호하는 것과 별로인 것들,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 그리고 달갑지 않은 관계들 등등 지금 딛고 서 있는 모든 것들이 현재 나의 판이된다. 나는 이 판 위에서 삶을 살아내고, 앞으로 를 꿈꾸며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미래가 오늘이 되는 날에 또 그만큼 판이 넓어지고 다양 해 질 것이다. 그리고 이 판이 커질수록 뒤집기가 힘들어진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판을 꼭 뒤집어야 하는가 이다. 답은 이렇다.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 컵라면을 먹을 때 실수로 찬 물을 부었다면 그 물을 빨리 덜어 내고 다시 뜨거운 물을 부을 것인 지 아니면 그냥 두며 익을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그냥 안 먹고 다 버릴 것 인지, 다시 새 라면을 꺼낼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에 따른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아, 내가 이 판을 뒤집어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스스로 이미 무엇인가 비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판을 고치거나 뒤집으면 되는 문제다.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판을 뒤집는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판을 뒤집는다는 것이 마치 지금까지 쌓아오고 성취한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버리고 부정하고 거부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서 다시 쌓아가야 한다는 그런 이미지, 아마도 사회문화적으로 쓰이는 “판을 뒤집다”라는 말과 미디어가 보여주는 판을 뒤집는 모습들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나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거부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런 겁과 두려움이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 누가 과거에 얻은 모든 성취와 삶의 판들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즐거워할 것인가 말이다. 두려움이 정상이다. 그래도 판을 뒤집고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런 결심을 했다면 사실 판을 뒤집는 것은 ‘한 끝 차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판을 뒤집는 것은 ‘판’을 물리적으로 확 뒤집어엎는 것이 아니다. 바로 판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그 다섯 끝 차이가 결과적으로 판을 와장창 뒤집으면서도 안정적으로 나의 인생 판을 멋지게 만들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관점을 ‘관’이라고 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사관, 세계를 보는 관점은 세계관, 인생과 삶을 보는 관점을 인생관이라고 한다. 이 관의 변화가 바로 인생의 판을 뒤집는 한 끝이다. 그 한 끝들을 공개하고자 한다. 다 합쳐서 다섯 끝짜리 인생의 판을 뒤집는 ‘관’은 바로, 돌아보는 후관, 옆을 보는 측관, 위를 보는 상관, 안을 보는 내관, 다시 앞을 보는 재관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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