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파크 하얏트 도쿄
여행이나 출장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가 아마 현지까지 이동할 교통편 예약일 것이고, 두 번째가 현지에서 내가 묵을 숙소 예약일 것이다. 여행 경험이 많은 고수들 중에서는 특별히 숙소 예약 없이 현지에 방문해 적절한 숙소를 찾을 수 있는 내공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계획이 없이는 불안해서 움직일 수 없는 J형 인간이자 여행 하수인 나에게 여행 기간 내 지낼 숙소를 예약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낯선 곳의 경험을 즐기기 위해 가는 여행이라고 할지라도, 그만큼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우선되어야 그 경험도 즐길 수 있는 하남자이기 때문이다.
숙소를 정하려고 하면 정말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며칠을 고민하는 것은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숙소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숙박 기간 내 예약 가능 여부, 위치, 가격, 교통편 등은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고, 자기 여행 스타일에 따라 숙소의 의미와 활용 목적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히 여행 중 휴식의 공간으로서 잠만 잘 잘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숙소를 선호하는 사람, 숙소에서 지내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그것도 경험이라고 생각해 럭셔리한 숙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마치 그곳에 사는 것 같은 경험이 중요해 현지인들의 집과 같은 숙소를 고르는 사람 등등. 여행 시 숙소를 선택하는 기준을 이야기 나눠보면, 그 사람의 평소 성향도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용적인 타격이 조금 있더라도 여행을 간다면 그 지역의 아이코닉한(곧 비싼) 숙소를 경험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운이 좋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국내나 해외 할 것 없이 출장을 갈 수 있는 기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물론 여행을 떠나는 것과 출장으로 새로운 지역에 가는 것은 그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출장으로 떠나는 여행은 역시나 회사에서 숙식에 대한 비용이 어느 정도 제공된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출장 시에는 여행보다는 조금 더 럭셔리한 숙소를 선택하기도 했다. 내가 전에 있던 회사들은 당시 기준으로 보통 하루에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130 ~ $160 정도의 숙박비를 지원받았었는데, 여기에 내 개인 사비를 조금 보태서 그 지역에 아이코닉한 호텔에서 하루 이틀 정도 지내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오늘 소개할 파크 하얏트 도쿄도 출장으로 떠나 2박을 해볼 수 있었던 호텔이다. 파크 하얏트 도쿄는 도쿄 신주쿠 한가운데 있는 랜드마크 격의 5성급 호텔이다. 일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홀로 우뚝 솟아있는 이 호텔은 사실 너무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지원하는 출장비로는 턱도 없이 모자란 비싼 숙소였다. 그래서 출장을 같이 가게 된 대표님께 강력히 그 호텔의 상징적 의미를 어필하여 대표님의 사비 일부를 더해 숙박을 쟁취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정말 이 호텔에서 단 하루라도 숙박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아실 바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4)'의 배경이 바로 이 호텔이었기 때문이다.(영화 제목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뭔가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같은 제목이라, 영어 원제인 'Lost in Translation'에 비해 작품의 느낌을 전혀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해 개인적으로 큰 불만이 있다. 뭐 어쨌든 글에서는 번역된 제목으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영화 로케이션 여행 마니아(?)인 나는 한 영화가 로케이션을 다루는 방식으로 영화를 구분하기도 한다. 완전한 가상의 공간이 메인인 영화, 글로벌하게 지구 여기저기를 로케이션으로 하는 영화, 하나의 도시/지역이 배경인 영화, 매우 한정된 특정 공간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영화(ex. '폰 부스(2003)', '맨 프롬 어스(2007)') 이런 식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하나의 도시(도쿄)와 한정된 특정 공간(파크 하얏트 도쿄)을 배경으로 하는 그 중간 정도에 위치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플레이 타임 내내 거의 모든 서사들이 이 호텔에서 진행이 된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배우인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 차 도쿄로 출장을 가게 된다. 그에게 이번 출장은 그리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던 데다 도쿄에 도착하니 낯선 언어와 문화에 고독감을 느끼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들뿐이다. 또 다른 주인공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얼마 전 결혼한 신혼부부로 사진작가인 남편의 일을 따라 도쿄로 왔지만, 그녀 역시 스스로 주도해 온 여행이 아닌 터라 낯선 도시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럴 때 위로가 되어야 할 남편은 무신경하고 바쁘다.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 가장 번화한 곳 한가운데 있는 매우 좋은 호텔에서 묶고 있는 둘,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둘은 그러한 공간이기 때문에 더 고독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둘의 이러한 감정 상태는 파크 하얏트 도쿄의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쿄 전경을 그리는 장면들로 주로 표현된다. 보통 우리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보고 싶을 호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쿄의 전경과 야경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고독한 이방인의 이미지로 너무나 잘 치환하여 보는 내가 그들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연출하고 있다.
또 창문 밖으로 보이는 도시 전경 외에도 호텔 안의 여러 공간들을 낯선 이방인의 고독함과 연결해 배경으로 매우 잘 활용하고 있는데,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특별히 유명한 공간들인 52층 바이자 레스토랑인 뉴욕 그릴과 수영장이 대표적 배경 로케이션이다. 영화에서 최소 4~5번 이상 등장하는 뉴욕 그릴은 손님들이 항상 북적대는 공간이지만 주인공 밥이 처음 낯설고 고독함을 느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본말로 대화하는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낯설게만 느껴지고,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미국인 팬들이 버겁기만 한 밥은, 편한 휴식을 즐기러 간 호텔 바에서 더욱더 고독해지기만 한다. 이후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게 되는 곳도 뉴욕 그릴인데, 누구나 선망하는 공간인 뉴욕 그릴보다 시부야의 작은 술집에서 더 행복한 둘의 모습이 매우 대조적으로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호텔에서 거의 모든 촬영이 이뤄지지만, 중간중간 삽입되듯이 들어간 로케이션 촬영들도 영상미가 결합해 꽤나 인상적이다. 낯선 도시 속 표류하는 이방인의 이미지나 이국적인(서양 사람들 기준) 이미지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주로 활용되는데, 시부야 타임스퀘어 교차로 앞 전광판 Q-Eye에서 방황하는 샬롯이나 일본의 신사들을 홀로 구경하는 샬롯(신주쿠의 주간지사, 교토의 헤이안 신사완 난젠지 사원)의 모습들은 영상적으로 참 아름다워서 오히려 더 외롭게 느껴지는 소피아 코폴라의 연출이 두드러지는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체케랏쵸 편에서 한 영화의 주제의식과 배경으로 활용된 로케이션(지역, 도시)의 이미지가 잘 결합할 때 매우 큰 시너지를 낸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그 설명의 아주 좋은 반례라고 할 수 있는데, 도쿄라는 도시나 파크 하얏트 도쿄 호텔은 사실 그리 삭막하고 이국적이며 낯선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만한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움이나 고독함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는 것은 좋은 각본과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 코폴라 감독의 섬세한 묘사가 정말 훌륭한 영화적 연출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니 안 가보고 싶을 수가 있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영화 추천 포인트>
1) 이 작품으로 골든 글러브 남우주연상을 탔던 빌 머레이 옹의 연기와 될 성 부른 떡잎임이 느껴지는 20살의 스칼렛 요한슨. 솔직히 스칼렛 요한슨이 정말 미치도록 예쁘다
<파크 하얏트 도쿄 추천 포인트>
1) 보통 거의 20년쯤 된 영화면 영화로 활용된 로케이션들이 너무나 많이 변해 영화에서 보았던 모습을 보기 힘든 경우들이 대분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한가운데 있는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파크 하얏트 도쿄는 영화에서 나온 장면들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잘 남아있다. 수영장, 뉴욕 그릴, 모두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도시 밖으로 보이는 도쿄의 스카이라인이나 전경은 좀 바뀌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