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6
직장인 생활 9년 차. 이제 막 과장 달고 한참 일에 몰입해서 커리어에서 성과를 내야 할 시기라고들 하는데, 아직도 월요일에 회사에 나가는 것이 적응이 안 된다. 지금까지 직장 생활한 만큼만 더 하면 그때쯤에는 적응이 될까? 오늘처럼 비도 오고 쳐지는 월요일에다 내일이면 역대급 태풍이 온다고 하니 퇴근길도 괜히 걱정되는 이런 날엔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또 여행 가려면 돈 벌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챙겨서 출근을 했다.
오전에는 주간 회의다 뭐다 정신없이 지나가고, 점심 먹고 나른하게 멍하니 앉아서 '언제 퇴근하냐 와', '오늘 집 가서 뭐하지'를 생각한다. 술 좋아하는 김책임님은 오늘 같은 날 이런 날씨에 어울리는 국물 요리에 술 한잔하며 힐링한다고 하는데, 술을 못 마시는 나는 괜찮은 콘텐츠 하나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최고의 힐링이다. 이런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직장생활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직장 생활 판타지(?) 간접 경험 영화를 몇 편 소개하고자 한다.
1)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2011)'
제목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그 영화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영화의 원제는 'Horrible Bosses'라고 하는데, 그보다 조금 길어도 한국 번역 제목이 설명이 필요 없이 와닿는 느낌이 좋다. 뭔가 외국계 기업이나 외국 직장생활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이렇게 상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생활이 우리나라만 이런 것인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3,500만불로 제작한 이 영화가 글로벌 2억이 넘는 대박을 쳤다고 하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 생활이 멍멍이 같고 그중 제일 힘든 것은 역시 회사 내 인간관계인 것은 다 똑같은가 보다. 진짜 악인에 가까운 상사와 그 상사들을 죽이기 위한 주인공 친구들의 이야기인데, 너무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설정들을 코미디 영화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현실적인 것보다는 영화적 과장이 있었기에 공감성 수치를 느끼지 않고, 편안하고 즐겁게 그들의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대리 경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 극단적이고 무서운 스티븐 연의 '메이헴(2017)'이나 고아성의 '오피스(2015)'보다는 유쾌한 접근이라 편안하다.
2)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2018)'
직장상사를 아예 보내버리는(?) 나도 위험한 그런 극단적인 방법 말고, 워커홀릭으로 나까지 달달 볶는 내 상사를 어떻게 좀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누구나 해봤을 이런 상상에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더해진 넷플릭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바로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특유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넷플릭스가 만드는 대작 블록버스터들보다 이렇게 가볍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들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또 뻔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하는 방식으로 괜찮은 수준의 영화를 잘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넷플릭스식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 영화. 영화의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글렌 파월인데, 이때만 해도 약간 모자 라보였던 이 배우가 최근 탑건 메버릭에 출연하며 말 그대로 떡상하고 있으니 눈 여겨보면 또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3) '인 굿 컴퍼니(2004)'
머리로는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삭막한 직장생활 속에서 연애 감정이 있으면 그 자체로 힘이 되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영영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만 있다면 힘든 직장 생활을 버티는데 한 번쯤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이건 연애를 하는 두 당사자 간 이야기고, 그 연애를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내가 싫어하는 나보다 어린 낙하산의 직장 상사와 인턴쉽을 하고 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내 딸이 연애를 한다면? 우리 회사 부장님들 뒷목 잡는 유쾌한 상상과 함께 너무나 예쁜 스칼렛 요한슨을 볼 수 있는 영화. 논외의 이야기지만 나도 몰랐는데 내가 스칼렛 요한슨을 좋아하는 것인지, 벌써 스칼렛 요한슨 출연 영화만 정규 콘텐츠나 잡생각 등에서 4~5편은 소개를 한 것 같다. 그중에서 이 영화에서 스칼렛의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4) '인턴(2015)'
직장생활 판타지라고 불러도 좋을 영화이자 조직 서열 내 최하위, 열정 페이 등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인턴쉽 제도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설정의 영화, 바로 '인턴'이다. 이미 은퇴한 70세의 벤(로버트 드니로)이 30세의 열정적인 여성 CEO 쥴스를 만나 처음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어려움도 겪지만 결국엔 멋진 한 팀이 된다는 단순한 플롯.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힐링이 된다고 느끼는 이유가 다 있다. 바로 벤 역할의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가 주는 편안함. 벤이 나는 마치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 산타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판타지 같다는 이야기지만, 그의 연기가 모든 개연성을 채워준다. 언젠간 우리도 저런 직장 동료를 만나는 날이 오긴 오겠지...? 근데 아무리 친해도 직장에서 만들어진 관계가 내 사생활은 몰랐으면 하긴 해(?)
5)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2017)'
"누구나 가슴속에 사직서 한 장쯤은 품고 살잖아요?" 4명 중 1명 꼴로 신입사원이 퇴사를 한다는 大조기퇴사 시대에 처음 회사가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회사 연혁을 알려줄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은 단 하루라도 줄이는 것이 좋기에. 높은 취업 문턱과 치열한 취직 경쟁에서 겨우 현실과 타협해 입사한 회사는 내 생각과 너무나 다르고, 어떻게든 버텨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직장생활의 현실. 과로로 쓰러져 죽을 수도 있었던 주인공 아오야마(쿠도 아스카)와 그를 살려주고 직장 생활을 버티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인 야마모토(후쿠시 소우타). 야마모토와 이야기를 나누며 힐링되는 과정들도 좋지만, 회사를 관두는 장면에서 깽판 치지 않고 대인배스럽게 넘기는 아오야마의 모습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직장생활, 특히 직장 생활 내 인간관계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한번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이 본인이 아닌지. 고백하자면 나도 꽤나 직장 생활과 업무 성과에 몰입해서 주변 둘러보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후배 직원들에게도 그리 좋은 선배도 되지 못했다. 회사에 미친놈이 없다면, 내가 아닐까? 다들 한 번씩 의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