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에 담긴 숫자와 예술
초밥들이 빙글빙글 레일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눈으로는 먹을 만한 접시를 탐색하며, 아이는 어떻게 키우고 싶냐고 묻는 선배의 말에는 너라면 무언가 생각이 있을 것 같아서, 라는 기대가 서려 있었다.
선배는 내게 종종 말했다. 나는 네게서 많이 배운다. 선배와 나는 십이지를 한 바퀴 돌아 범띠를 공유하는 띠동갑이었지만, 어쩐지 그는 늘 그 한 바퀴를 무시한 채 친우처럼 묻고 장난을 걸었다.
그날의 점심 식사는 육아휴직을 앞둔 나와의 일종의 송별 식사였다. 대화는 거의 육아에 대한 것이었다. 과거가 된 선배의 육아와 미래가 될 나의 육아는 띠동갑의 차이보다 길어서 그 격차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이나 컸다. 그 시절에는 육아휴직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다는, 그래서 남자가 육아한다는 게 선택지의 맨 마지막 항목조차도 될 수 없었다는, 그러니 육아는 멀고 서툰 것이라고 지레 확정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는 어떻게 키우고 싶냐고 묻는 선배의 음성은 나를 향했지만, 일면 과거의 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했다. 천지개벽할 만큼 변한 육아에 대한 인식과 환경의 변화에 걸맞게, 육아는 멀고 서툰 것이 아니라 네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것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이제 성인이 되는 선배의 딸은 육아의 범주에서 벗어나겠지만.
나 역시 먹을만한 접시를 고르며 말했다. 예술이 있는 육아를 하고 싶어요. 선배의 얼굴에 이건 또 무슨 허세가 등등한 헛소리인가 하는 기색이 비쳤고, 나는 얼른 변명하듯 부연했다. 아이의 삶이 피폐하지 않고 행복으로 충만했으면 한다고. 그런데 숫자가 그걸 방해한다고. 삶을 곤궁하게 하는 것은 성적, 등수, 돈 같은 것들이라고. 디지털이 0과 1이라는 이진법 숫자로 이뤄지듯, 우리 삶도 십진법의 숫자로 이뤄져 있다고. 삶이 누적될수록 숫자라는 늪에서 벗어나기 어렵지 않냐고. 거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예술뿐이라고.
선배의 눈썹이 크게 들썩이는 동안 나는 광어 초밥을 잡아챘다. 횟감은 얄팍했고, 밥은 소박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말마따나 밥알이 몇 개인고 가늠해 보자니 삼백이십 개는 안 되어 보였다. 손님의 허기가 쉬이 채워지지 않아야 객단가는 올라갈 것이라는 회전초밥집 사장님의 숫자 전략이 접시 위에 놓여있었다. 나는 광어 초밥 두 피스를 순식간에 입에 털어 넣고 접시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나는 점심값은 생각지 않고 기꺼이 초밥집 사장님의 전략에 넘어가기로 했다. 새콤달콤한 단촛물밥과 짭조름한 간장이 묻은 횟감의 소용돌이는 가히 예술적이었다.
회전초밥집의 레일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니던 것은 숫자이면서 동시에 예술이었다. 거기서 낚아챈 접시가 쌓여갈 때, 우리 안에 채워진 것은 숫자였을까, 예술이었을까. 나는 내 아이가 먹을 것은 예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숫자는 짐짝처럼 우리를 무겁게 할 것이고, 예술만이 구름처럼 우리를 하늘로 띄워줄 수 있을 것이었다. 숫자는 어깨 위에 있었고, 예술은 발밑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