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안녕

식물 집사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by 조성현


본격적으로 식물 집사가 된 것은 신혼집을 꾸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우리는 후암동의 작은 빌라를 전세로 얻어 살림을 꾸렸다. 집으로 이어진 골목은 꽤 가파른 데다 자동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날 수 있는 너비였기에 스산한 구석이 있었다.


골목 건너편에는 여느 빌라촌이 그렇듯 또 다른 빌라가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집과 맞은 편 빌라는 딱 골목의 폭만큼의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었으니, 생면부지의 사람과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사는 것 같았다. 빌라와 빌라, 그 사이에는 오로지 사생활 침해라는 경계심만 있었을 뿐, 푸른 녹음의 기운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던 것이다.




아내는 식물이 가진 푸른 기운을 사랑했다. 소월길 가로수를, 남산공원 잔디밭을, 남산둘레길 벚나무를 찬양하고 숭배했다. 그런 사람이 빽빽한 빌라촌에서 타인의 시선을 피해 창문 밖의 푸름을 포기했으니, 신혼 살림이 퍽 낭만적이었음에도 늘 그리움을 안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푸름들을 집 안을 하나둘 채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식구를 들이기도 하고, 새끼를 치듯 분주(分株)하다보니 화분이 더 이상 놓을 데가 없을만큼 늘었다.


후암동에서 오 년을 넘게 살고, 억압되었던 욕구를 일거에 분출하듯 정면에서 산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도 어쩐일인지 화분은 점점 늘었다. 매일 아침 화분 속 흙을 만져보고 물을 주던 일과는 여전했고, 식물들은 자라기를 멈출리 없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리 바깥에 녹음이 우거진다한들 내 보살핌을 기다리고 있는 화분의 존재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내 하루의 일부가 되어있던 것이다.




그런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변수가 생겼다. 아이가 이제 곧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바닥에 놓인 화분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가 될 터였다. 아기들은 돌을 삼키고, 머리끈을 삼키고, 건전지를 삼킨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화분들은 몇 달 안에 방을 빼야 할 가엾은 처지에 놓였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어야 할 참이다.


나도 화분들에 애정이 적지 않은지라 화분의 보금자리를 마련해보려고 골몰하고 있다. 작은 녀석들은 선반에 올리고 천장에 매달아 이사를 시키고 있다. 문제는 덩치가 크고 무거워 바닥에 둘 수 밖에 없는 화분들인데, 아무리 아기의 손이 닿지 못할 구석으로 몰아 넣는다고 해도 모두를 보존할 방도는 없어 보인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어머니 댁으로 잠시 이사를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울보다는 거기가 더 공기도 좋고 정취가 호젓하다고 구슬려 보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산이 보이는 집이어도 화분은 늘어만 간다.


작은 화분은 이렇게 천장에 매달아 두면 되는데,
바닥에 놓인 화분들이 문제다. 미안하게 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밥알이 몇 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