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후 반드시 대화하며 드세요.
아내가 깨기 전에 샌드위치를 만들어두었다. 식빵에 햄, 치즈, 스크램블에그, 아보카도 따위를 층층이 쌓으며 오늘 하루도 잘 버텨보자, 생각했다. 새벽에 아이를 살피고 늦은 잠에 빠진 아내가 일어나 신선한 샌드위치를 발견한다면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 이거 먹고 오늘 하루도 잘 버텨보자.
샌드위치는 내 것까지 두 개를 쌌다. 아내가 잠에서 깨면 아내와 마주보고 앉아서 함께 먹을 요량이었다. 그때 만약 아기가 깨서 밥 달라고 울어대면 그것도 어렵겠지만. 아가야. 부디 엄마, 아빠가 샌드위치를 다 먹을 때까지만이라도 늦잠을 청해주렴. 샌드위치를 반으로 잘라 접시에 올렸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밥을 함께 먹는 것도 쉽지 않다. 한 명이 수유를 하면 나머지 한 명이 밥을 먹고, 한 명이 잠을 재우면 나머지 한 명이 밥을 먹는다. 이제 생후 오십 일된 아기니 그게 어쩔 수 없다는 걸 뻔히 알지만,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 어떻게든 같이 먹어보려고 아이가 잠든 사이 밥상을 차려봐도 아이는 이때다 싶은지 잠에서 깨서 식사를 방해한다. 아이가 잠에 들지 못하면 결국 2인분이 차려진 밥상에 한 명씩 엇갈려 앉아야했다.
그렇게 먹는 밥은 맛이 없다. 서로의 고됨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내일을 다짐하지 못하는 식사는 식사가 아니라, 뭐랄까, 섭취였다. 몸에 물리적 영양소를 주입하는 행위는 마음까지 헤아리지는 못했다. 내가 함께 앉는 밥상에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냥 요리를 좋아하고 그걸 맛있게 먹어주는 아내를 보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함께 먹는 시간이었다.
원체 음식에 민감한 편은 아니었다. 뭘 먹어도 괜찮고, 덜 먹어도 상관 없었는데, 먹는 시간에는 민감했다. 먹는 시간에는 먹을 것 말고도 무언가 있어야했다. 행복한 대화든지, 평온한 휴식이든지, 뭐든.
그런 이유로 회사에서는 점심 약속을 잡지 않았다. 으레 잡는 점심 약속에는 행복한 대화가 흔치 않아서 그랬다. 의무적으로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적당히 맞장구치다보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는 게 그렇게 아까웠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 공원 가서 책 읽으며 김밥을 먹었다. 햇살이 포근해 잠이오면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거기엔 푸근한 독서와 평온한 휴식이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보니 어떤 동료들은 오해를 했다. 같이 점심 먹는 거 안좋아하시잖아요, 라는 말도 들었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누군가와는 함께 하면 좋았고, 누군가와는 싫었다. 그렇다고 누구와는 먹고 누구와는 먹지 않겠다 할 수 없으니, 내 쪽에서 먼저 점심 약속을 잡지 않게 되었을 뿐이었다.
자연스레 적막한 점심시간이 늘었다. 공원을 가서 김밥을 먹거나, 도서관에 가서 백반을 먹었다. 의무적으로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적당히 맞장구치다 끝나는 점심시간은 줄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농하며 웃는 시간도 줄었다. 가끔은 떠드는 시간들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은 아내와 함께 먹으며 떠들고 싶었다. 고요한 거실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샌드위치와 나는 마치 무대에 팝스타가 등장하길 고대하듯 아내를 기다렸다. 방에서 부시럭 소리가 들리고 이내 방문을 열고 아내가 나왔을 때, 아내가 샌드위치를 보고 활짝 웃었을 때, 그것이 내가 고대하던 순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곧 거실은 소란스러워졌다.
어쩐일인지 수달이는 깰 때가 되었는데도 자고 있었다. 아빠의 샌드위치에 담긴 애정이 딱해서였을까. 엄마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을 바라볼 시간은 마련해주었다. 나와 아내는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웃었다. 엄마, 아빠 밥 먹을 시간도 주고, 수달이가 효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