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삼일의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를
아내가 일본으로 떠났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잠에서 덜 깬 나는 아내에게 아무 걱정말고 즐기고 오라고 당부했다. 캐리어가 빠져나간 현관문 틈으로 찬바람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 상쾌한 공기는 한낱 겨울의 찬바람이 아니라, 출산과 육아에 지쳐던 아내에게 주어진 모처럼의 휴가가 만든 설렘이었다. 그 찬 공기를 마시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딸을 데리고 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어젯밤에 아내가 미리 싸준 짐들을 차에 싣고, 딸을 카시트에 태웠다. 내비게이션은 야속하게도 목적지까지 한 시간 이십 분이 걸린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도로의 한복판에서 딸이 깨지 않기를 기도하며 조심히 운전하는 것 뿐이었다. 신호에 걸려 차를 세우면 딸의 깊은 호흡 소리가 들렸고, 나는 숨을 죽였다. 다시 출발하면 딸은 다시 곯아 떨어졌다. 다행히도 어머니 댁에 도착할 때까지 딸은 깨지 않았다. 이런 효녀가 있나.
아내의 비행편을 확인해보니 아내는 일본 상공을 날고 있었다. 저 높은 곳에서 얼마나 기대하고 있을지 빤히 보였다. 아내는 일본에 대한 호감이 깊었다. 일본 작가, 패션, 음식, 소품, 그렇게도 많은 애착들이 일본에 있었지만,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에 일본 여행을 꺼리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15년 동안이나 그 다짐을 지킨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 이유는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것이었다. 출산을 하고 일본에 갈 거라는 그녀의 다짐은 오늘로써 결말이 났다.
도쿄에 도착한 아내가 보내오는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하나에 즐거움이 묻어있었다. 중간중간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이 꼭 끼워져있었다. 빵과 빵 사이에 패티를 넣은 햄버거처럼, 파스타 사이에 라구 소스를 뿌리는 라자냐처럼, 혹시라도 혼자 딸을 돌보는 게 퍽퍽하고 답답할까봐 촉촉한 감사 표현을 넣어주었다. 미안한 만큼, 고마운 만큼 아내가 더 힘껏 여행을 즐기길 바랬다. 그게 딸과 나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