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기 있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前) 충주맨 김선태 씨가 '안경을 뿔테로 바꿨더니 사람들이 못 알아보더라'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유독 안경의 존재감이 큰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안경이란 단순히 시력을 보조하는 기구가 아니라 눈코입과 완전히 동일한 얼굴의 부위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도 안경을 썼을 때와 벗었을 때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아내다. 당연히 아내에게도 김선태 씨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아내가 야근을 하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렌즈를 벗고 안경을 끼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지나가던 동료가 아내를 그냥 지나치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동료는 '누구...'라는 표정으로 아내를 응시하기를 몇 초, 보다 못한 동료2가 동료1에게 "OO잖아. 왜 못 알아봐!"라고 말해주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나는 아내에게 "에이, 아무리 그래도 옆에서 말해줘야 알 정도는 아니잖아?"라고 했지만, 옆에서 아무리 말해줘도 못 알아보는 일까지 생기고 말았으니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의 딸이다.
아내는 단조로운 육아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모처럼의 외출을 즐기고 돌아온 길이었다. 아내는 고작 한두 시간짜리 외출에 딸이 그리웠다며 들어오자마자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딸을 안으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활짝 웃으며 제 엄마에게 쏙 안겼을 텐데 어쩐지 표정이 요상했다. 딸은 입을 삐쭉거리더니 별안간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딸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아기는 안경까지 얼굴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딸에게 '안경 쓴 엄마'란 존재할 수 없고 단지 '눈 주변에 동그란 선이 그려진 엄마'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편견 없는 생명체인가! 안경을 쓰면 엄마가 되고, 안경을 벗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아기의 세계에서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에단 헌트'가 쓰는 최첨단 변장 장비 따위는 필요 없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쥐구멍에 숨고 싶을 때, 오늘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을 때는 안경 하나만 쓰면 그만이다. 만사에 눈치 보느라 피곤한 어른 입장에서는 부러운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내는 계속 안경을 쓰고 외출할 수는 없다며 고육지책을 생각해냈다. 이 만원짜리 안경을 하나 사서 렌즈 낀 눈 위에 쓰는 것이다. 렌즈만 끼고 밖을 돌아다니다가 딸을 볼 때는 안경을 쓴다. 이 솔루션은 의외로 효과가 톡톡해서 이제 딸이 엄마를 못 알아보고 우는 일은 없다. 안경 하나로 순식간에 휙 하고 사라졌다가 또 휙 하고 나타나는 아내는 우리 집 '에단 헌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