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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CP Jan 19. 2020

브런치 작가가 되어 볼래요.

퇴사의 변

저도 퇴사했습니다


작년 11월 말, 10년 간 머물렀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짧게 보면 일주일, 길게 보면 일 년 여 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유를 꼽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이유들을 하나하나 파고들다 보면 그만두지 말아야 할 이유가 떠오르곤 했다. 다 집어치우고 하나의 생각에 집중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아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내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 회사이니 변화를 가져오려면 퇴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아이의 아빠다. 내 나이 서른아홉(만으로는 서른여덟, 빠른 년생이라 학번으로 치면 마흔).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일해왔고, 거둔 성과도 있으니 뭘 해서라도 먹고살지 못하랴 하는 마음이었지만, 지난 12월 한 달은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가운데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내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정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가족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그런 삶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여 나는 지금 우리 가족의 행복을 전제로 두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지를 고민하며 내 다음 삶을 구상 중이다. 소위 워라밸이라고 하는 것이 나의 바뀐 가치관에 부합하는 양상으로 주어진다면 그 자리는 나에게 좋은 자리일 것이고, 그런 자리를 찾기 어려우면 내 사업을 해볼 생각이다.



사랑하는 일,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는 IP프로듀서다. 좀 길게 늘여 칭하자면 스토리 IP 프로듀서. 쉽게 말하면 영화, 드라마, 만화, 공연,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밑그림이 될만한 스토리를 기획 개발하여 사업화시켜내는 일이다.

한 해를 보내며 일에 있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콘텐츠 관련 여러 국제 행사에서 작품을 피칭(pitching)하는 것이다. 왼쪽 사진은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E-IP피칭에서 쇼박스 초이스 어워드와 관객상을 수상한 모습(가운데가 나, 왼쪽은 얼굴 공개를 꺼리는 작가님, 오른쪽은 함께 일했던 추태영PD)이고,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11월 중국 청두 SF 컨벤션 때 진행 중인 SF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모습이다.

나는 이야기가 사람과 세상의 변화를 꿈꿀 수 있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 일은 인간의 공감 능력 계발에 도움을 줘 세상의 공동선이 그나마 유지되도록 만드는데 기여하는 일이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일 두 가지 사이에서 시간 자본 확보의 균형을 맞춰내지 못하는 것이 지난 몇 년간 나와 내 아내의 큰 고통이었다. 이제는 고통을 덜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아내도, 가족도, 그리고 일도.



성장의 기로에서 섰습니다만


그 사이 아이들은 자라 큰 애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는 더더욱 힘이 세진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달에 ‘우리집’에 이사를 간다. 아내는 12월에 이직을 했고 나는 어떤 식으로든 3월부터는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일을 할 것이다.

2020년은 우리 가족에게 여러 변화가 한 번에 닥쳐온 시기이고 성장해야만 하는 시기이다.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것만큼이나 녹록지 않은 것이 없지 않나. 새로운 환경에서 각자의 성장을 도모하고 두 아이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해내는 것이 우리 부부의 최대 과제이며 난제이다.

 

나는 몇 가지 질문들을 들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물론, 본가와 처가까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4일에서 5일 정도 대만이나 중국을 여행하며 이른바 ‘2020 구상’을 정리하는 것을 최대치의 허용치로 생각했었다. 그만큼은 꼭 시간을 빼 반드시 실행하고 싶었다. 이십 대 후반에 일을 시작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어 혼자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작년 연말 어느 날, 모처럼 아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놀랍게도 아내는 이번 기회에 유럽에 한 번 다녀오라고 권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파리지앵이랍니다.


나는 지금 파리에 있다. 유럽 한 번 평생 와본 적 없던 내가 파리 몽마르트 어느 아파트 2층 방 테이블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다섯 째 날을 보냈고 5일을 더 머무를 예정이다.

불과 이틀째 만에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곳저곳을 오가며 이 도시가 가진 고전성과 관대함, 그 속에서 피어난 우아함을 만끽했다. 파리를 선택한, 그것도 파리에서만 10일을 보내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파리에 대해 별 관심은 없었는데, 여행 고수 지인들의 추천으로 무작정 파리에 온 것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 여행을 계획한다면 파리에 가라고 권할 것이다. jokertale 브런치의 시작은 왜 파리인가로 시작하려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의 여행기일 것이다. 아빠이고, 프로듀서이면서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에 서있는 삼십 대 후반 남성인 한 개인의 소소한 발악들이 이 브런치를 채울 것이다.


파리를 세탁기 삼아 나를 돌리고 비비고, 파리 내음으로 빨아서 잘 건조시킨 후, 이곳의 공기를 듬뿍 흡수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고 무엇을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한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얻은 파리 몽마르트 인근의 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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