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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기 Aug 07. 2019

바르셀로나 한 달 살기 중간평가

'시간은 정말 상대적인 거구나.'


퇴사를 앞둔 한 달의 시간은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는데,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중력의 적용을 받는 것 같다. 한 달 살기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안고 바르셀로나에 첫 발을 디딘 게 벌써 삼 주 전이라니.

Pixabay

바르셀로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첫 두 주 동안은 흐리고 추운 날씨의 반복이었다. 스페인의 눈부신 태양과 파란 하늘, 새로운 활력을 찾게 해 줄 에너지와 아이디어, 그리고 새로운 인연, 이 모든 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바르셀로나 역시 현실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공간에서의 일상에 적응을 하고,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이 반복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초조함과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불안감에 편치 못한 마음으로 첫 두 주 정도를 보낸 것 같다. 괜히 왔나 하는 후회도 있었고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더 열심히 이것저것을 찾아다녀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아등바등해야 하지?'


세 번째 주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바닥에 누워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노려보던 중 문뜩 스쳐간 생각이다.


이렇게 정말 멋지고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는데!



바닷바람을 맞으면 조깅하는 것도, 2000년 된 성벽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고 200년 된 건물을 매일 오르내리는 것도, 광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듣는 것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올리브와 루꼴라와 치즈를 먹는 것도(내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신진대사였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얼마나 큰 기쁨이고 사치인가. 미세먼지에 시달리다가 이렇게 지중해의 태양과 상쾌한 바람과 깨끗한 공기와 파란 하늘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 속에 있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가.


일상을 속박하는 의무와 책임을 잠시 내려놓고 자유로울 수 있는 이 시긴이 얼마나 소중한가.




여전히 변한 건 없다. 어느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일상이 되고 이 멋진 도시에서 난 여전히 내가 편안함 느끼는 행동의 틀 안에서, 익숙한 습관대로 살고 있다. 다만, 계획하던 습관만큼은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고 행동한다. 성과에 대한 집착은 버리고 그저 순간순간을 여유롭게 즐긴다. 막연히 기대했던 새로운 일들과 인연, 인생의 경로를 바꿀만한 깨달음 따윈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도 중간평가에는 후한 점수를 주기로 한다. 나는 꿈꿔왔던 한 달 살기를 실행했고, 판타스틱한 날씨와 도시의 거리와 해변을 누비고 있으며,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만족스러울 수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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