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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by 힉엣눙크

새벽에 잠이 깼다. 뭔가가 부르는 듯한 소리가 잠을 설치게 했던 것 같다. 커튼을 젖히니 옅은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았고 아침의 공기는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뻐꾹... 뻐꾹... 뻐꾹... 일정한 간격을 두고 뻐꾸기가 울었다. 습한 여름 새벽의 적막을 가르는 소리는 더욱 선명하고 또렷하게 들렸다. 맑고 깊은 소리는 어쩐지 처량했다.


뻐꾸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 철새로 5월에서 8월 사이 다른 새들의 둥지에 탁란을 한다. 33센티미터의 큰 새임에도 알을 맡길 대상으로 알락할미새·종달새·붉은머리오목눈이 등 작은 새를 선택한다. 뻐꾸기는 그 새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순식간에 알을 낳고 떠난다. 날아갈 때는 둥지 속 알 하나를 물고 간단다. 숫자를 맞춰놓기 위해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일명 뱁새라고도 한다. 황새 따라 하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주먹을 쥐면 그 안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그 새다. 언젠가 자연다큐 프로그램에서 뻐꾸기의 탁란 과정을 보았는데 뻐꾸기의 알은 일찍 부화해 둥지의 다른 알들을 등으로 밀어서 아래로 모두 떨어뜨렸다. 제 몸보다 몇 배나 커진 뻐꾸기의 새끼를 제 자식으로 알고 정성껏 먹이를 물어다 주던 뱁새의 모습은 애처롭고 처연했다.


이런 이해 못할 습성 때문에 서양에서 뻐꾸기(cucoo)는 정신병자로, 뻐꾸기 둥지(cucoo' nest)는 정신병원을 은유하는 말로 사용한단다. 1977년 개봉한 잭 니컬슨 주연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에서 ‘뻐꾸기 둥지’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인간도 지구 둥지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매머드, 디프로토돈, 도도새, 파란영양, 스텔라바다소... 등 수없이 많은 동식물들을 이미 멸종의 나락으로 밀어 떨어뜨렸고 지금도 멸종 위기종들은 추락의 경계선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또 한편으로는 가축으로 삼은 소, 돼지, 닭 등을 사료를 먹여도 더 이상 자랄 수 없다는 경제적 이유로 자연 수명에 한참 못 미쳐 도축시키고 있다. 알면서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지질학적으로 지구의 현세를 이제 충적세(沖積世)가 아닌 인류세(人類世)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네덜란드의 화학자이자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것으로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훼손된 지구환경이 이전과 전혀 다른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 둥지에서 동물은 물론이고 인간도 이제 스스로가 두렵다.

그러나 새들은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뻐꾸기의 탁란을 피하기 위해 제비는 인가의 처마에 둥지를 틀게 되었고 어떤 새들은 뻐꾸기의 알을 구별 가능하도록 자신의 알 색깔을 바꾸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더 늦기 전에 인류도 이제 전략을 바꿔서 유의미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렇지만 성장하자 자신을 키운 둥지를 미련 없이 떠나는 뻐꾸기처럼 환경오염과 자원고갈로 가망 없는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 이주하자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전략이 있다고 하는데 화성에 갈 기술이면 가더라도 제발 둥지는 살려놓고 가자 양심적으로. 어쩌면 우리가 화성으로 떠난 후 지구는 저절로 복원될지도 모르니 어서 떠나는 게 지구 생명들에게는 희소식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새벽잠을 쫓아낸 그 뻐꾸기의 구슬픈 울음소리는 제 새끼를 남에게 맡기고 맺힌 한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업장을 속죄하고픈 절절한 마음이었을까.

울음소리에 일찍 잠 깬 새벽녘, 어슴푸레한 거실의 한편에 앉아서 텅 빈 공간을 날아오는 붉게 젖은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을 때 불현듯 기억의 쓸개즙이 역류해서 입안을 가득 채웠다. 얽히고설킨 사고의 다발 속에서 잊힌 줄 알았는데 끈질기게도 어느 순간 다시 부화하는 그 뜨겁고 축축한 오욕의 기억이 둥지를 날아 망각의 강을 건너서 쓰디쓰게 올라오는 것이었다.


어두운 기억의 둥지에 버리듯 낳아둔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마음의 알들이 까닭 없이 되살아날 때면 나는 뻐꾸기처럼 뻔뻔하게도 속 깊이 울음 울고 싶다.


2018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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