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볕 좋은 날 검은 물체가 처마 밑을 휙 지나갔다. 좀 있다가 다시 얼른거릴 때 살펴보니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봄의 진객이었다. 얼굴은 치자열매같이 갈색, 배는 흰색이고 등과 날개는 반질거리는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물 찬 예술가는 아름다웠다.
이사 온 지 5년이 넘었지만 정말 눈을 씻고 보려 해도 귀했다. 이제 멸종해 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어릴 때만 해도 시골은 물론 도시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환경파괴로 어느 순간부터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제비를 지척에서 다시 볼 수 있다니 마냥 신기하고 반가웠다.
몇 차례 탐색을 하더니 한 놈이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처마 밑 외벽 벽돌에 떡하니 붙어 앉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내 옆에 있는 우리 집 개에게도 눈길을 주더니 고개를 바삐 움직이며 연신 주위를 재빠르게 살폈다. 곧 뒤이어 또 다른 한 놈이 그 옆에 붙어 앉았다. 한 쌍의 제비가 둥지를 마련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옆에 있던 개가 짖기 시작했다. 급기야 벌떡 일어서 앞발을 벽에 기댄 채 제비를 올려다보며 ‘컹컹’ 댔다. 난감해진 내가 앞을 가로막고 해도 소용없었다. 소란을 그렇게 피웠는데도 제비들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제비와 개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골키퍼는 큰소리로 펄쩍거리며 을러댔고 키커는 골대에 집중하며 냉철하게 주위를 살폈다.
키커가 드디어 날았다. 흙공을 주둥이로 물고 와서 벽에다가 점을 찍었다. 1 실점. 연이어 2 실점... 한 쌍이 번갈아 가며 며칠에 걸쳐 반복하더니 제비집이 떡하니 들어서 버렸다. 엄청난 스코어로 막을 내린 그 경기는 종료되었고 어쨌든 평화가 찾아왔다. 패한 골키퍼는 언제 그랬냐는 듯 퍼질러 누워서 제비를 무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위로했다. “은달아, 때로는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봄소식을 물고 홀연히 나타난 제비가 타고난 귀소성으로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부디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제비 가족이 물고 온 희망의 씨앗이 옛날처럼 인간과 제비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평화의 세상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본다.
201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