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는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중이었다. 수국 앞을 지나치다가 내가 한마디 던졌다. “이 수국은 왜 이렇게 색깔이 칙칙해지지? 이전엔 괜찮았는데”
그러자 아내가 내 입을 손가락으로 막고서 팔을 끌어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해! 걔 앞에서 그런 얘길 함부로 하면 어떻게?” 하고 나무랐다. 그 행동과 말이 장난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뭇 진지했다.
순간 이 여자가 애니미즘 신봉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당산나무를 섬기는 게 전통인 한국사람으로 나무를 인격화 할 수도 있겠다는 수긍의 감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수국은 이제 심은 지 몇 년 안 된 조그만 관목일 뿐인데 거기에 대고 마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의인화하는 아내의 뜬금없는 행동에는 어처구니를 넘어서 실소가 나왔다.
아내는 수국들을 아꼈다. 장마철이면 꺾꽂이를 해서 정원 여러 군데에 심어서 가꿔왔다. 그런 참에 내가 수국 면전에 대고 이러쿵저러쿵 얘길 함으로써 애써 꽃피고 있는 걔네들의 사기를 꺾어놔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상처를 받아 시들해지면 당신 책임이라는 듯 힐난의 눈총도 원 플러스 원으로 덧붙였다.
자리를 옮겨 대문 앞 근처에 다다를 무렵 아내가 공조팝 앞에서 멈춰 섰다. 내가 아끼는 애지만 아내는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나무다. “꽃 필 때는 이쁜데 지고 나면 시커멓게 변해서 영 보기가 싫어... 몇 개를 옮기든지 없애면 안 돼?”하고 아내가 물었다.
나는 아내의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말했다. “쉿! 얘 앞에서 다 들리게 앞담화를 하면 어떻게 해? 그런 얘기를 하려면 저리 가서 우리끼리 뒷담화를 해야지!”
아내는 당했다는 듯 깔깔대고 웃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모순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조용히 하시라 이건 뒷담화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뒷담화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협력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들이나 먹이에 대한 정보보다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단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했고 그래서 인류가 보다 더 큰 집단을 이뤄 나감으로써 다른 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가정, 직장, 사회, 언론 등 오늘날 인류 전체가 뒷담화로 꽉 차 있다. 뒷담화를 빼면 아마도 대화할 거리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학자는 뒷담화에 가담한 사람들은 서로 유대와 신뢰가 더욱 강화된다고도 한다.
인류의 뒷담화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별로 좋은 습성은 아니다. 나의 허물을 내가 잘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쑥덕댄다고 생각해보라 누군들 기분 좋겠는가? 하지만 그보다 더 좋지 않은 건 앞담화를 하는 거다. 사람을 앞에 두고 쓴소리나 충고를 해준답시고 얘기하는 건 오히려 상처를 줘서 관계를 악화시키기 쉽다. 섣부른 앞담화보다는 차라리 당사자 모르게 뒷담화를 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내와 난 그날 이후 우리 정원에서만은 이제 뒷담화만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