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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것이 있다.

by 힉엣눙크

“계란이 왔어요. 굵고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도심 주택가에 살 때는 거의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행상들이 외치던 소리가 있었다. 대개는 계란장수, 아니면 철마다 과일 행상들 또는 수리ㆍ수선 행상들처럼 뭔가를 팔려고 다니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대로 물건을 사려는 행상도 간혹 있었다.


”컴퓨터~ 삽니다.“ 또는 ”금반지~ 삽니다.“


요즘 시골에 있으면 행상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다. 웬만한 건 택배로 배달시키거나 시내 대형마트에서 한꺼번에 장을 보기 때문에 소소한 구매 수요가 없기도 하고 인구밀도도 낮으니 행상이 올 이유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시골에도 간혹 찾아드는 트럭 행상이 있다. 바로 개장수다.

트럭 행상의 스피커 소리가 멀리서 울리면 은달이는 대뜸 대문 앞으로 달려 나가서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짖어대곤 한다. 그런데 개장수가 오면 웬일 인지 조용히 엎드려 있다. 지도 뭔가 두려운 게 있나 보다. 일전에 우리 집 대문 앞에서 트럭을 멈춘 개장수와 지긋이 눈길을 맞추고 오금이 저려버려서인지 아니면 집사람이 이전부터 농담으로 하던 ”은달!, 말 안 들으면 개장수 아저씨한테 팔아버린다. “는 겁박을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전에는 개장수 트럭의 스피커 성능이 좋지 않아서 외치는 몇 마디 중에 ‘개~ 삽니다.....” 말고는 잘 안 들렸다. 그런데 며칠 전 보신탕의 계절을 맞아 다시 찾아든 개장수의 그 소리에서 나머지 부분도 또렷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마 스피커를 새로 업그레이드했나 보다.


”개~ 삽니다. 염소~ 삽니다. 각종 동물 삽니다. “


제대로 들리게 된 소리 중 생뚱맞은 ’ 각종 동물‘은 무얼 말할까 하는 의문이 대뜸 들었다. 코끼리까지 다 사준다는 뜻일까? 아니면 닭이나 오리, 고양이 등 평범하게 예상되는 것들을 말하나? 혹은 자극적인 보양식 내지 약용을 위한 뱀, 개구리, 지네, 두더지 등 야생동물을 말하는 것일까? 도대체 개장수가 생각하는 각종 동물은 뭘 말할까.


나는 트럭을 돌려세우고 ”당신이 말하는 각종 동물의 범주는 어디까지요?“

”닭, 오리, 돼지, 소“가 넘쳐나는데 뭘 더 찾아서 먹으려 하오?”

“몬도가네와 같은 식도락은 이제 작작 들 좀 할 때도 되지 않았소?”하고 소리쳐 묻고 싶었다.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개장수 대신 대답했다.


“인간도 동물이니 ’각종 동물‘의 범주 안에 당연 포함되지. 당신도 속 썩이면 은달이랑 같이 저 트럭 편으로 보내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


개장수의 행상소리가 불러온 의문은 그렇게 간단히 귀결되었고 간 곳 없는 그 소리는 짙은 녹음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집에도 팔 것이 있다는 납량특집 같은 생각만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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