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면 벌어지는 일

by 힉엣눙크

아침에 출근하면 차를 마시기 위해 모두 탕비실에 들른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호수에 사슴이나 얼룩말, 코끼리와 사자, 홍학과 펠리컨들이 생명수를 마시려고 모여들듯이. 직급, 연령, 성별의 구분 없이 직원들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 그곳을 찾는다.


냉장고와 냉온수기, 싱크대와 커피 머신, 선반에는 각자의 머그잔과 접대용 컵이 놓여 있다. 그리고 몇 종류의 차가 담긴 바구니가 보인다. 휴게실은 따로 있어서 여기에 의자나 소파는 없다. 그 작은 공간, 조금은 어색한 장소에서 짧게 마주치는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거나 말이 없거나 또는 작심하고 수다를 떤다.


“아침에 차가 많이 막혔죠?” 내가 '탕비실 호수'를 찾은 황새에게 인사를 건네자 “대략 30분” 무심하고 짧은 답이 돌아왔다. 부부싸움을 한바탕 하고 나왔는지 아니면 아이들 등교에 진이 빠져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토끼는 말도 없이 물만 먹고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종달새도 있다. “댁이 가까우니 아침에 커피 한 잔 하고 나오시겠네요?” 나는 다감한 질문에 반가워 대답했다. “집 가까운 사람이 약속 장소에 제일 늦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이상하게 여유가 없어.” “늦게 일어나시나요?” “아니, 일찍 일어나는데 운동하고 명상하고 책도 읽고 하다 보면 어느새 출근시간이야. 나름 바빠.”나의 변명에 그녀가 대답했다. “명상을 하면 온갖 잡념이 오히려 더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렇지. 어떤 때는 다른 생각에 온통 빠져있다가 끝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잘 되기도 하지. 중요한 건 다시 돌아오는 거야. 생각이 일어나는 걸 당연하다 여기면서.” 종달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명상을 시작하려고 두드리면 청아하게 울리는 ‘싱잉볼’ 소리처럼 말이다.


해외여행을 가서 호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겪게 되는 낯선 경험이 있다.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Hi"(안녕) 혹은 "Enjoy your day!"(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미소를 띠며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일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상황이라면 대개 눈길을 피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층의 이웃을 만나더라도.


유목문화의 영향으로 낯선 이와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는 게 일상인 서양에 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방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농경문화적 특성 때문에 타인과의 인사법이 서툴다고 한다. 문제는 도시화로 인해 낯선 이들과 공존해야 하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간극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타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있다. 등산을 할 때 말이다. 산속 깊은 곳, 좁은 오솔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수고하십니다." ”거의 다 왔어요." "힘내세요." 등의 말로 서로를 격려한다. 등산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를 벗어나 동일하고 평등한 경험을 함께 하는 일이다. 먼저 올라가도 나중에 뒤따라가도 결국 정상에 오르고, 오른 사람은 다시 내려와야 한다. 산이 엮어준 공동체 의식 때문일까. 함께 힘든 일을 경험한다는 동병상련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일까. 아니면 산속에서 만나는 타인에 대한 공포심을 완화해 주려는 호의일까. 무엇이 되었든 산에서는 우리도 활발히 인사를 건넨다. 그런 관습을 가정과 직장과 일상으로 끌어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관계 전문가 존 가트먼 박사는 부부 관계에서 신뢰가 어떻게 쌓이는지 40여 년이 넘게 연구했다. 그가 오랜 시간 관찰하고 발견한 ”관계의 핵심‘은 무엇일까? 대화를 얼마나 깊이 있게 하는가 혹은 얼마나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가 보다는 일상에서 주고받는 사소한 말속에 스며든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평생을 함께하는 행복한 부부의 대화를 관찰하면 언제나 존중과 배려 그리고 긍정의 단어가 대부분을 차지하더라는 것이다.


반면, 불행감이 크고 종래 파경에 이르는 부부의 대화 내용에서는 '비난과 경멸 무시'의 태도가 많이 드러나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부부뿐만이 아니라 자녀, 친구, 지인, 동료 등 전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널리 적용된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행복한 관계를 위한 묘약이나 비법이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가트먼 박사는 이렇게 되묻는 듯하다. “타인이 보낸 사소한 신호에 당신은 어떻게 응답을 하고 있는가?”


일본 지바현 다테야마시 작은 어촌 마을에서 '아라카와 히로유키‘ 노인은 70년 동안 잠수사 생활을 해오고 있다. 80세가 훌쩍 넘었음에도 다이빙 숍을 운영하면서 관광객이나 다이버들을 안내하고 있다 한다.


그가 공기통을 메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깊고 맑은 바닷속, 아름다운 바위와 물고기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바닥에 다다른 그가 망치를 집어 들어서 철구조물을 두드린다. 무언가 수리를 하나 싶지만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탕 타당...” 그러자 어디선가 커다란 물고기가 나타난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사람에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혹돔'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두려움 없이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온다. 노인도 녀석의 머리에 불쑥 솟아난 혹을 쓰다듬어 준다. 마치 애완견을 다루듯.


그들의 종을 초월한 우정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중 신사‘를 관리하던 그는 우연히 만난 혹돔 한 마리에게 먹이를 주었는데 진심이 통했는지 그를 잘 따랐다고 한다. 사소한 일상이 반복되고 만남이 누적되자 그들 사이에 신뢰가 쌓였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 명상을 하는 듯한 내면의 고요, 짙은 남색이 주는 경외. 그 속에서 만난 친구 혹돔에게 그는 ‘요리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티브이 다큐멘터리 화면은 곧 놀라운 장면을 보여준다. 바다 깊숙한 곳, 산소를 불어넣은 ‘다이빙 벨’에 할아버지가 들어가서 마스크와 호흡기를 벗고 휴식을 취하자 요리코도 따라 들어와서 고양이처럼 편안하게 안기는 것이다. 그는 녀석을 애인처럼 쓰다듬고 감싸준다. 물고기는 본능적으로 공기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한다는데 ‘요리코’는 할아버지의 품을 떠나지 않고서 참고 견딘다. 그를 향한 강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오랜 시간 쌓인 둘의 우정이 깊은 감동을 주는 장면이었다.


신뢰와 우정 그리고 사랑은 크고 화려한 무언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시냇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고 바다로 흘러들 듯, 일상의 사소함이 조금씩 쌓여 이뤄지는 일. 진심 어린 눈길, 상대에 대한 인정, 작은 교감이 지속되면 어느 날 위험을 감수하고, 고통을 이겨내게 만드는 강한 믿음이 생긴다. 마음은 활짝 열리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일. 일상이 기적이 되는 순간이 온다. 잠수사 노인과 혹돔 요리코처럼.


이제 우리들 각자의 다이빙 벨, 싱잉볼을 두드리자. 당신의 오랜 친구 혹돔이 조용히 헤엄쳐 다가오리니. 그러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안녕! 날씨가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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