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오르는 설국

by 힉엣눙크

“터널을 막 빠져나왔더니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어요.” 승진자 교육을 받기 위해 사치재터널을 통과하던 때를 떠올리던 그녀의 말이었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눈세상은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연일 폭설 소식이 이어졌지만 경상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눈구름이 백두대간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좀체 눈을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차창 가득 순백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오랜만에 아이처럼 설레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환해졌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온천마을을 방문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와 얘기를 나누며 따뜻한 찻잔을 부여잡던 그녀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 갑자기 드러나는 놀라운 변화의 순간을 우리는 드물게 경험하곤 한다. '뜻밖의 행운‘이나 '우연한 발견‘을 뜻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처럼.

대학생 때였다. 친구들은 하나 둘 입대를 했고 나는 좀 더 미루고 싶었다. 시험을 끝낸 가을 무렵,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운 감정이 뒤섞여 마음이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구도자처럼 지리산으로 불쑥 떠나고 싶었다. 소설 <태백산맥>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전, 대원사 계곡 코스로 짧게 다녀오기는 했지만 종주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두려웠지만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 이면에는 혼란스럽고 괴로운 심경이 정리되었으면, 나의 길이 아스라이 드러났으면 하고 바라는 소망이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지도와 나침반을 구하고 짐을 쌌다. 일정은 사흘이었지만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게되는 경우를 대비했다. 여벌의 옷을 넉넉히 준비했고 침낭은 물론이고 작은 담요도 꾸렸으며, 한 됫박의 쌀과 라면 그리고 참치 캔 등을 넉넉히 챙겼다. 또한 밤길에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 커다란 손전등, 철제 프레임의 묵직한 텐트, 마지막으로 비가 올 때 텐트 주변에 물길을 만들기 위한 무쇠 야삽까지 갖췄다. 커다란 배낭에 그 모든 것들을 욱여넣었더니 꽉 차서 터질 듯했다. 들어보니 ’끙‘ 소리가 날 정도로 묵직했다. 누가 봤다면 히말라야 등반이나 한 달 살이 하러 떠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너무 무거워서 줄여 볼까도 고민했지만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 무엇도 뺄 수가 없었다.


갈아타고 또 갈아탄 후 마지막 차에서 내려섰을 때 온 산은 벌겋게 불타고 있었다. 계곡의 물마저도 붉은빛이 어리어 흘렀다. 피처럼 붉다는 속설이 있는 '피아골‘다웠다. 새벽 일찍 첫 차를 타고 출발했지만 도착하니 오후였다. 어깨는 배낭의 무게로 벌겋게 쓰렸고 나는 벌써 반쯤 지쳐 있었다.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올랐다. 절정에 이른 단풍이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짊어진 짐의 무게가 마치 내 고민과 번뇌의 무게인양 나를 짓눌러서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었다. 숨은 가빠오고 체력은 빠르게 소진되었다. 평소 운동을 했었지만 이런 중노동을 위한 것으로는 턱도 없었다. 산속의 해는 일찍 졌고 날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이러다가 길을 잃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빨리하다 보니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종주코스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날은 캄캄했다. 체력은 고갈되었는데 밤은 오고 진퇴양난이었다. 나는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 마루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엉뚱한 길로 빠져 헤매다가 죽지 않으려면 길 위에서 하룻밤을 묵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텐트 칠 자리를 살펴보니 울퉁불퉁 바위 투성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맑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세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혹시 손전등 가지고 있어요?” “네... 있어요.” “잘됐네요. 어두워서 걷기 힘들었는데 같이 가요. 피아골 대피소까지.” “어디서 오셨어요?” “우리는 노고단에서 왔어요. 그쪽은요?” “전, 피아골에서 출발했어요.” “근데. 왜 여기에 있는 거죠? 벌써 도착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짐 때문에요. 너무 무거워서 내 체력으론 무리였나 봐요.” “힘내요. 얼마 안 남았으니.” 나는 주섬주섬 배낭 속의 짐을 꺼냈다. 한가득 짐이 부려지고 나서야 밑에 있던 랜턴이 나왔다. 그 양을 쳐다보던 세 명의 여성들은 놀라워했다.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쌌어요? 과자에 라면과 참치는 왜 이렇게 많아요? 보따리장사예요? 아니야, 보부상이지.” 깔깔거리면서 놀리는 소리에 그제야 그들의 행색을 살필 수 있었다. 세 명의 여성들은 마치 뒷산을 산책하듯 작은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뾰로통해서 말했다. “손전등은 왜 빠뜨리셨나요?” 누군가 대답했다. “이럴 줄 몰랐죠.” 그녀들은 무대책이었고 나는 과대책이었다. 대책 없는 사람들끼리 캄캄한 저녁, 피아골 고갯마루에서 그렇게 만났다.


내가 앞장섰고 그 뒤를 세 여성이 따랐다. 나는 수시로 손전등을 뒤로 비춰서 그들이 넘어지지 않게 했다. 이윽고 저 멀리 불빛이 보이더니 피아골 산장이 드러났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준비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숙박비를 지불하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짐을 던지자마자 자리에 쓰러졌다. 구토가 느껴질 만큼 힘이 들었다. 막 잠이 들려는 그때였다. 아까 만났던 여성 중에 한 명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저녁 먹어야죠.” “아뇨. 생각이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요.” "안 돼요. 그래야 기운이 나요. 자 일어나서 우리랑 같이 먹어요. 그쪽 것도 준비했으니까.” 나는 정말 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 배려를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내려가보니 밥과 김치 그리고 라면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은 같은 대학 동기들이었다. 함께 지리산을 경험해 보자고 무턱대고 길을 나섰다 했다. 나를 깨웠던 여성이 말했다. “지리산엔 왜 왔어요?” 나는 김치를 우물거리며 잠시 머뭇거렸다. “글쎄요. 산이 좋으니까요.” 눈동자가 깊고 새카만 그녀만이 내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나는 녹초가 된 몸을 누이고 영면에 들듯 잠에 빠졌다.


다음날 캄캄한 새벽, 산장에 묶고 있던 투숙객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잠이 깨었다. 이윽고 조용해지자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해가 환하게 밝아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모두 떠난 후였다. 온몸이 결리고 쑤셨다. 아침은 간단히 빵으로 때우고 산장의 샘물로 입가심을 했다. 물통을 가득 채운 후 출발했다. 아직 체력은 회복되지 않아서 발걸음은 무거웠다. 어제 그 여대생들은 나보다 먼저 떠난 뒤였다.


지리산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끝없이 펼쳐진 푸른 산맥은 첩첩이 겹쳐있고 세상 모든 고통과 번뇌는 발아래 묻힌 것처럼 아득했다. 산과 산 사이에는 마을이 있고 도시가 자리잡고 있을 터였다. 인간 세상은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오솔길을 돌아들 때마다 마주하는 천년의 고목과 바위는 우뚝 서서 신비로웠다. 하얀 고사목과 푸르른 이끼 그리고 낯선 초목들은 모두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발길마다 황홀했고 숨길마다 감동이었다.

설렁설렁 걸었지만 다행히 어두워지기 전에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저녁을 준비할 때 세 여성을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식사를 같이 했다. 내가 소주병을 꺼내자 그들이 말했다. “보부상이 맞네. 없는 게 없어. 하하.” 날은 금방 어두워졌다. 해가 지니 캄캄한 밤이 되었다. 설거지를 하러 두 명은 수돗가로 내려갔고 전날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깨워주던 그녀와 나는 뒷정리를 했다. 말이 없던 그녀가 내게 물었다. “꿈이 있어요?” “무슨 꿈요.” “그냥... 뭘 하며 살아야겠다. 그런 거.” 나는 대답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것, 결혼하고 애 기르고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것...”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너무 막연하잖아요.” “그래요. 어쩌면 꿈이라고 할 만한 게 없군요. 그럼 그쪽은요?” “옷을 만들고 싶어요. 누구나 입고 싶은 옷을. 아, 저건 그 사람이 만든 옷이야! 그런 거.” “부럽네요.” “뭐가요?” “구체적이잖아요.” “뭐가 구체적이죠?” “ 나보다는 더 구체적이잖아요. 진짜 꿈같이.” 그때 산장의 외등 불빛이 켜졌고 그녀의 눈동자에 붉은 점이 찍혔다. 깊은 그녀의 눈망울이 왜 그토록 반짝이는지 나는 잘 몰랐다. 우리는 꿈은 꿈이기 때문에 꿈이며 그래서 꿈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설거지는 끝났고 그들은 모두 산장으로 돌아갔다. 나는 홀로 남아서 너른 세석평전을 천천히 걸었다. 내 삶의 풀리지 않는 퍼즐 속에 홀로 갇혀 있다는 갑갑한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발아래만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눈동자가 생각나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밤하늘. 아! 이렇게 많은 별을 내 평생 본 일이 있었을까? 무수한 별들의 형용할 수 없는 찬란함이 보석처럼 반짝이면서 나에게 쏟아졌다. 마치 “몸을 가누고 바로 서면서 눈을 쳐든 순간, 쏴아 하고 소리를 내며 은하수가 시마무라의 속으로 흘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는 <설국>의 마지막 문장처럼 말이다.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피우는 일이었구나”


함민복 시인의 <흔들린다> 중 일부이다. 삶이란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흔들리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보다 흔들리는 것들이 더 강한 법이다. 다시 돌아오고 멀어졌다가 기어이 다시 돌아오는 일. 흔들림을 인생의 상수로 인정할 때 내 삶이 더욱 강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낭에서 꺼낸 손전등이 비춰주던 지리산 종주길처럼 나의 길이 하얗게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녀가 물었던 꿈처럼 나의 꿈이 선연히 비치길 원했다. 하지만 삶은 오리무중. 내 젊은 날들은 걸어도 또 걸어도 질문은 계속되고 답은 무지개처럼 지연되었다. 인생 알 만 하다는 생각이 오만이고 착각이었음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피아골 대피소에서 내 어깨를 흔들어주던 그녀의 손길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일어나, 그리고 꿈을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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