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학생들은 음악수업을 노는 시간, 딴짓하는 시간으로 알았고 음악 선생님도 그런 학생들의 태도에 이골이 나서 열정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학교 측은 음악은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을 위해서라면 제자리를 비켜줘야만 하는 찬밥쯤으로 여겼다.
음악 선생님은 별명이 ‘파워뚱’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노처녀였는데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매가 많이 넉넉하셨다. 얼굴과 몸통 사이에 있어야 할 목이 잘 안보였다. 아줌마 파마에 엷고 짧은 눈썹, 단추 구멍 같은 눈, 군대 훈련소 조교 같은 목소리가 떠오른다. 선생님은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교단에 도착하면 한동안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쩌렁쩌렁 매서웠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으로 노려보면 말썽꾸러기 아이라도 합죽 입을 닫았다. 수업 중에 떠들고 장난질하다 걸리면 불려 나와서 망신을 당하거나 벌 숙제를 받았다. 벌 숙제는 음악 관련 과제물을 제출하는 게 아니라 초코파이 한 개를 다음 수업 시작 전에 미리 교탁 위에 올려두는 것이었다. 수업을 시작하면 ‘파워뚱’은 항상 교탁 위에 놓인 초코파이를 먼저 확인했다. 벌 숙제로 제출한 초코파이는 수업이 끝나면 가져가셨다. 어떤 날은 흐뭇한 미소로 서너 개를 챙겨가기도 하셨다.
당시 학교의 체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말 안 듣는 꼴통 학생을 대하는 방식은 남녀 선생님에 따라 달랐다. 남선생님이 손목에 찬 시계를 풀고 귀싸대기를 날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여선생님은 훨씬 양호하게 막대 자, 지시봉 혹은 출석부 모서리로 때렸다. 우리는 헌법에 선생님들의 체벌권이 명시되어 있고 대통령도 감히 침범할 수 없으며 만일 대들었다가는 징역형을 살 수 있다고 여길 정도였다. 거의 폭행 수준으로 맞아도 항변하거나 부모에게 알리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들도 선생님에게 맞은 자녀 문제로 학교를 찾는 경우는 드물었다.
‘파워뚱’ 선생님도 말썽꾸러기들을 다루는 방법으로 체벌 몇 가지를 즐겨 사용하셨다. 그중에 특이하게도 전설의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를 흉내 낸 ‘외다리 박치기’와 ‘헤드락’이 있었다. ‘외다리 박치기’는 야구의 외다리 타법처럼 교탁 앞으로 불려 나온 학생을 향해 본인이 직접 한쪽 다리를 들었다 놓으면서 이마를 맞부딪혔는데 때로는 학생보다 자신이 머리를 싸매고 아파해서 아이들을 파안대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간혹 헤드락을 걸고 꿀밤을 주기도 했는데 헤드락에 걸렸던 아이들은 나중에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좋았냐?’며 놀림을 받았다. 아이들은 음악 선생님을 무섭다기보다는 까다롭다 여겼다. 잘못 걸려들면 개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다. ‘파워뚱’ 선생님은 반장의 구령에 맞춘 학생들의 수업 시작 인사를 받자마자 대뜸 말씀하셨다.
“번호 순서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노래를 부른다 알겠지? 1번!”
1번 학생이 일어나긴 했지만 선생님의 지시가 농인지 진담인지 헷갈려하며 부르라는 노래는 안 부르고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몸을 배배 꼬았다.
“빨리 아무 노래나 불러~엇!”
선생님의 도끼눈과 불호령에 아이들은 번호순대로 일어나서 마지못해 불렀다. 대개 최근 수업에서 배웠던 노래거나 아니면 동요였다. 산토끼를 부른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몇 소절 부르면 멈추게 하고 다음 번호를 호명했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었다. 내 번호 바로 앞 학생이 일어나더니 당당히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다. 자신은 정말 아는 노래가 없고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자 ‘파워뚱’ 선생님은 애국가라도 부르라고 고함을 지르셨다. 결국 그 학생은 애국가를 사절까지 불러야 했다. 한 반에 60명이 넘었으므로 한마디 또는 한 소절씩 불렀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번호까지 다 마치고 나자 선생님은 자신의 메모장을 들여다보고 적힌 번호를 호명하셨다.
“내가 호명한 번호의 학생들은 이제 합창부다. 수업을 마치면 음악실로 모인다. 알았나?”
여기저기서 신음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수업이 끝나면 남들처럼 바로 집에 갈 수 없다는 것, 연습에 대한 부담감, 무대에 서야 한다는 두려움에 호명된 번호의 아이들은 모두 머리를 싸맸고 나머지 아이들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 나는 박수를 칠 수 없었다. 내 번호도 불렸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설명을 들었는데 지방교육청 주관으로 합창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관내 모든 학교가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음악실에 모인 아이들은 발성연습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성부를 나누고 곡 연습에 들어갔다. 변성기에 접어들었던 나는 베이스를 맡았다. ‘포도알 동무’, ‘울산아가씨’, ‘들장미’ 등의 곡을 배웠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헷갈리지 않게 각 성부별로 따로 연습을 시켰다. 조금이라도 음이 틀리면 가차 없이 고함이 날아왔다. 선생님은 우리가 한 음 한 음 정확한 소리를 낼 때까지 피아노를 치고 또 치셨다. ‘파워뚱’ 선생님의 이전 수업에서 볼 수 없었던 열정적 모습이었다. 우리들은 목소리가 큰 아이, 작은 아이, 박자가 빠른 아이, 느린 아이 등등 엉망진창이었다.
합창에 관심도 없던 아이들, 타성에 젖어 있던 음악 선생님, 열악한 시설과 부족한 지원, ‘파워뚱’ 합창부는 첫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애초 자발적인 참여자는 없었으므로 합창부원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떼와 같았다. 하지만 연습이 시작되자 스스로 흥미를 찾아냈다. 각 성부끼리 알아서 개별 연습도 하고 다른 학생의 노래를 듣고 잘못된 점을 알려줬다. 서로 맞춰주고 도와주고 믿어주기 시작했다. 일주일 이주일 연습시간이 쌓일수록 소리의 결이 점차 달라졌다.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흥미와 감동을 느끼고 있었으며 조금씩 열정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제각각 따로 놀던 목소리들은 고운 음색으로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각 성부별로 모두 모여 함께 연주를 했다. 낮은음과 높은음이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순간 짜릿한 전율이 왔다. 노래를 함께 완성했다는 뿌듯한 느낌을 우리 모두는 공유했다. 표독스럽던 선생님의 얼굴에도 어느새 희미한 미소가 어렸고 아이들은 무대에 설 날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음악실에 안 나와도 된다는 선생님 말씀이 있었던 것은 연습이 한창 무르익었을 즈음이었다. 합창대회가 갑자기 취소되었다고 하셨다. 그해에는 대한항공 폭파, 아웅산 테러 등이 발생하여 온 나라가 어수선했다. 신문에서는 연일 굵고 커다란 활자들이 지면에서 튀어나올 듯 요란했고 방송에서는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와 먼지 자욱한 버마 아웅산 묘소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순직자들에 대한 애도의 분위기로 나라 전체가 숙연해졌고 북괴를 타도하자는 시위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학교에서는 반공을 주제로 한 웅변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회 취소의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우리들은 매일 남아서 연습해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는 생각에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했다. 하지만 같이 연습했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땐 허전하면서 섭섭했다. ‘파워뚱’ 선생님은 그동안 수고 많았다며 초코파이를 하나씩 나눠주고 격려해 주셨다. 우리는 누군가의 벌 숙제를 먹었다.
사람들은 음악을 여흥쯤으로 여겼다. 딴따라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살아가는데 필수요소가 아니라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생각했다. 학원 내에서도 음악 과목의 위상은 사회적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남을 위해서라면 학업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내몰려야 했던 드라마 ‘아들과 딸’의 후남이 같은 존재였다. 음악시간은 놀아도, 딴짓해도 되는 시간이라 생각했던 우리들은 합창부 경험을 통해 음악이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음악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맞춰주는 것을 배웠고 나와 전체가 하나가 되는 아름다움을 알았다. 음악의 힘이 결코 나약하지 않음을 우리는 합창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1983년 ‘파워뚱’ 합창부는 미완성이었다. 만족할 만큼 완전히 곡을 소화하지도 못했고 정작 무대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어쩌면 우리 삶도 그런 것 같다. 정답 없는 문제를 풀면서 완성을 지향하며 살아갈 뿐이다. 미완성이면 어떤가. 파워뚱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당신. 이 세상에서 이렇게 만나서 ‘포도알 동무’처럼 정답게 살아가다 돌이켜 추억의 미소 지을 수 있다면. “파워뚱!"
“포동포동포동 살찐 포도송이처럼 동글동글동글 알찬 우리 동무
송알송알송알 모여 방실방실방실 정다운 우리 동무
우리모두 사이좋게 포도송이처럼 아름답게 노래하자 ~ 우리 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