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네가 시골마을에 집을 구한 건 5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그 집 뒤쪽으로는 온통 대나무로 뒤덮인 작은 산이 있는데 바람이 불 때면 ‘쏴아’ 하고 시원한 소리가 마음을 쓸었다. 본채와 별채 모두 오래전에 초가집이었던 것을 새마을운동 시절 스레트로 바꿨고 이후 본채는 편의를 위해 입식으로 개조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별채는 나무기둥에 황토벽과 구들이 있는 전통 한옥이어서 참으로 귀하고 반가웠다.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집을 샀다며 나는 내 집인 양 기뻐했었다.
손위 동서는 명절 때면 고스톱 지존이었다. 패를 딱딱 소리 내어 맞추며 판을 쓸었다. 대항마는 아내였지만 호적수까지는 되지 못했다. 복스럽게 먹고 종종 밥 한 그릇 더 달라고 외쳐서 장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던 동서는 자녀들이 모두 타 지역으로 떠나자 가슴에도 빈방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시골 출신으로 손재주도 좋아서 틈틈이 평상도 만들고 아궁이도 만들었다. 공허감을 그렇게 몰입하는 시간들로 메워나간 것이었으리라. 부부는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요즘도 거의 매일 시골집에 들러서 텃밭을 가꾸고 마당도 손질하며 시골살이를 바지런히 즐긴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주말이면 친지나 지인들을 초대해서 삼겹살을 굽거나 가마솥에 백숙을 고아서 함께 나눠 먹었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처형네는 그 시골집을 얻고 나서는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어느 날 처형네가 일찍 퇴근하고 시골집에 갔더니 고양이 울음소리가 자꾸 나더란다.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재래식 화장실 밑 똥통에 빠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호기심 많은 새끼 고양이가 그만 변소 밑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동서는 살려 달라고 울고 있던 새끼 고양이를 건져 올려서 먹이를 챙겨 주었다고 했다. 다행히 변들은 오래되어 딱딱히 굳어있었기 때문에 고양이가 더렵혀지지는 않았단다. 녀석은 머리에 알파벳 엠자 모양의 털무늬가 있었다. 이름은 서울에서 잠시 내려왔던 처조카가 지었다고 했다. 마징가에서 마자를 빼고 그냥 ‘징가’라고 불렀다. 징가는 저를 살려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인지 이후에 유난히 동서를 잘 따랐다.
그 인연으로 처형네는 새끼 고양이 가족과 함께했다. 시골집에 들르면 어떻게 알았는지 산에 들에 흩어져 있던 고양이 가족들이 모두 몰려와서 처형네를 반겼고 처형네는 끼니를 챙겨 주었다. 징가의 어미는 처음 볼 때부터 뒤쪽 다리 한쪽을 절었다고 했다. 그래도 해마다 새끼를 낳아서 기어이 키워내더란다. 처형은 그런 어미를 안쓰러워했다. 새끼들은 다 자라자 모두 떠나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징가만은 어미 곁에 남았다.
최근 아내가 언니와 함께 시골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막 도착하니 어떻게 알았는지 징가가 먼저 처형을 반겼다. 강아지처럼 졸졸 따르다가 처형이 그릇에 사료를 담아주자 밥을 먹었다. 사료가 반쯤 남았을 무렵 뭔가를 잊은 듯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잠시 후 다른 고양이 하나를 데려오더란다. 처형은 다리를 절뚝이며 따라오는 늙은 고양이를 가리키며 징가의 어미라고 아내에게 나지막이 일러주었다. 어미가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 서있던 징가를 보며 매번 저렇게 한다고 덧붙였다.
오늘처럼 시원스레 비가 오는 날이면 동서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쓸며 고양이 가족과 마루에 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양박에 쓰리고를 외치며 빗방울 툭 떨어진 댓잎처럼 파랗게 웃고 있을 것이다.
처형네 다녀온 이야기를 다 마치자 아내는 전화기를 찾았다. 혼자 살고 계시는 장모님께 아내는 매일 저녁 전화를 한다. 장모님이 일 년 전 위장이 좋지 않아 병원에 급히 실려갔다 온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 식사는 하셨어? 뭐 드셨는데? 오늘도 무지 더웠지?. 외출할 때 마스크 꼭 써. 알았지? 밥맛 없어도 꼭 챙겨 드시고...”
잔소리 같은 아내의 전화가 끝나자 나도 불쑥 전화가 하고 싶었다. 최근 새로이 조명받고 있는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 속의 김혜자처럼.
“여보세요. 우리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 우리 어머니요? 스물 초반에 청주에서 시집오셔서 삼 남매 낳고 이곳저곳 이사 다니면서 고생 많았던 분이셨어요. 말수가 적었고 웃으면 마음결처럼 가지런한 하얀 이가 목련꽃같이 피어나던 분이셨어요. 아픈 몸으로 숨이 차오를 때도 먹성 좋은 자식들을 위해 종종 과자를 구워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분이셨지요. 내가 체했을 때 엄지손가락을 못 따서 바늘만 들고 한참을 주저하시고 벌레 한 마리도 못 잡던 그 착하디 착하던 우리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 못 찾으면 소식이라도 좀 전해주세요. 당신 돌아가신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머리 희끗해진 큰아들이 아직도 눈물 나게 꼭 한 번만 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