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늦은 아침에 눈을 뜨니 숙취로 머리가 무거웠다. 지난밤 적정 주량을 넘긴 게 화근이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일상생활의 부대낌 속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가슴을 때리고 지나가면 남은 생채기로 쓰렸다. 유난히 휑하고 아리는 날에는 종종 술로 달랬다.
어디선가 퉁... 퉁퉁... 퉁...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누군가가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집안에서 나는 소리여서 신경이 바싹 곤두섰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작은 방을 살폈더니 유리창 너머로 찌르레기 한 마리가 보였다. 그렇게 가까이서 찌르레기를 마주하기는 처음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찌르레기가 두 걸음쯤 떨어진 거리에서 생생하게 보였다. 물 흐르듯 우아하고 매끈한 몸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깃털, 생명의 활기가 느껴지는 가벼운 몸짓, 모든 거짓된 것들을 무력화시키는 새카만 눈동자, 잘 가다듬어 반듯한 부리. 하늘을 나는 짐승을 땅 위 바로 지척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왈칵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슬펐다. 찌르레기는 유리창을 부리로 ‘퉁’하고 한 번 더 치고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휙 날아가 버렸다.
가까이 다가갔다. 찌르레기가 날아가고 없는 텅 빈 유리창에는 빗물이 그어진 듯 찌르레기의 주둥이 자국이 어지러이 남아 있었다. 야자수 그늘과 파파야 향기 가득한 남쪽 나라를 뒤로 하고 멀고 먼 하늘길을 날아와 여기 유리창 앞에 앉았을 찌르레기. 유리에 비친 모습이 짝짓기 철을 맞아 맞닥뜨린 연적으로 여겨졌을까. 아니면 남방에서 헤어진 그립고 애틋한 가족이었나, 아릿한 상처만 남기고 떠난 연인이었던가. 아니면 못나고 어리석은 제 모습이었을까.
찌르레기가 남기고 간 자국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찌르레기 자리에 내가 서있고 가슴팍 언저리에 그 상처들이 겹쳐졌다. 마치 찌르레기의 부리에 쪼인 것처럼 가슴이 저릿해왔다. 내가 스스로 나의 가슴을 쪼아왔던 수많은 날들이 유리창에 얼룩진 빗금처럼 떠올랐다.
힘을 빼고 가볍게 살고자 했건만 맘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나를 잃고 감정에 매몰되기 일쑤였다.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들로 나를 자책하고 후회하고 그렇게 반복하며 살아왔다. 전에는 좌절과 분노의 이유를 바깥에서 찾기 바빴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나를 괴롭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차츰 수긍하고 있다.
유리창을 들여다본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머리에서 이제 성긴 숱 사이로 머리 밑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팽팽하던 눈가에는 주름이 늘었고. 복숭아빛 볼은 어느새 탄력을 잃었다. 50대 중반의 사내가 우두커니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세차게 노려보고 자책하고 탐욕하던 젊은 날의 거센 모습은 사라지고 힘 빠지고 수더분하고 어리석은 이가 남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고. 이제는 쥐려고만 하지 말고 놓아주기도 하자고. 되도록 상처는 주지도 받지도 말자고.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하자고. 처진 어깨의 그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돌아서는 유리창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빗물처럼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