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우리 집에 눌러살기 시작한 것은 약 한 달 전쯤이었다. 초대나 허락은커녕 묵인도 하지 않았으나 막무가내로 비집고 들어앉았다. 계약을 하지 않았으니 전세나 월세를 받은 적도 없었다. 주거침입죄를 물어서 내쫓으려고 하였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왜냐면 울음소리가 들려 살짝 엿보았더니 자식들까지 막 낳아놓은 것이었다. 핏덩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을 내 마음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친척이나 지인도 아니고 심지어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물까치 가족이었다.
물까치는 우리나라 텃새로 까치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보다 조금 작다. 전반적으로 잿빛인데 날개와 꼬리는 푸르스름하고 머리 부분만 까맣다. 자기들끼리 소통할 때는 “왜~에? 왜~에?”처럼 들리는 정다운 소리로 노래하지만 적을 위협할 때는 시끄럽게 “꽤애~액” 거리며 자못 위협적이다. 종종 무리 지어 다니는데 자기 영역에 덩치 큰 까마귀가 들어오면 여러 마리가 함께 공략해서 내쫓아버린다. 까마귀과인데 머리가 좋아서 지능이 사람의 6~8세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집단생활을 하는데 어미새가 죽으면 가족이나 친지들이 남겨진 자식들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물까치가 우리 집 정원에 있는 금목서에 시나브로 드나들었지만 설마 둥지를 틀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물까치는 보통 사람들을 경계하기 때문에 가옥 바로 옆에 게다가 그 옆으로는 길이 나 있어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에 정착하리라고는 더욱 의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느닷없이 물까치가 날아와서 내 머리를 꼬리로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인근 가지에 앉아서 “꽤에~액”거리며 노려보았다. 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화가 나서 손뼉을 크게 쳐 내쫓고는 녀석이 자주 드나드는 금목서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안쪽 높은 가지에 둥지가 있는 게 보였고 둥지 안쪽으로 조그마한 머리가 살짝 보였다. 새끼가 알에서 깨어났고 어미는 본능적으로 근처에 있는 우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집주인도 못 알아보고 공격할 건 뭔가. 아내는 풀을 뽑다가 몇 차례나 머리에 발톱 공격을 당했다고 했다. 게다가 우리 집 반려견 은달이는 주요 타깃이 되어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은달이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어 물까치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머리 좋은 물까치는 그런 은달이의 습성을 눈치채고 가까운 가지 위에서 내려다보며 놀리듯 마음 놓고 공격을 해댔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은달이가 측은했다. 박수를 크게 쳐서 말려주고는 했지만 항시 그러지는 못했다. 어느 아침에는 사료를 먹고 토하기까지 했다.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물까치의 공격 세례를 참지 못한 우리는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부화하여 둥지를 떠나기까지 18일이 걸린다는 것. 뒤에서 날아와 발톱이나 부리로 상대의 머리를 공격한다는 것. 등등의 정보를 입수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보았다. 그중에 하나를 적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당분간 모자를 쓰고 정원에 나가기로 했는데 모자 뒤에는 사람 눈을 프린트한 종이를 붙였다. 아내와 나는 서로 뒤통수에 달린 눈을 쳐다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스꽝스러웠지만 효과는 있었다. 모자 뒤통수에 눈이 달려 있으니 물까치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모자에 달린 눈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거주하는 사람을 드디어 알아보고 인정하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서로에게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물까치가 가짜 눈이라는 것을 눈치챈다면 어쩔는지 모르겠지만 둥지를 떠나기 전까지만은 다시 공격하지 않기를 바랐다.
얼마 전 뉴스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UNSW) 진화·생태학 부교수 트레이시 로저스 박사 등이 참여한 연구팀이 아프리카 보츠와나 북서부 오카방고 삼각주 지역에서 4년여에 걸쳐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내용인즉슨 이 지역에서 가축들이 사자 등 맹수의 공격을 받아 피해가 심했는데 소의 엉덩이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더니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사례는 자연 생태계에도 존재한다. 나뭇잎을 갉아먹는 애벌레 중에는 몸에 새겨진 무늬가 마치 큰 눈을 부릅뜨고 있는 듯이 보여서 천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생존율이 높은 종이 있다고 한다.
눈을 활용하는 것은 동물들에게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유치원 승합차량이나 대형 트럭 후미에 눈동자를 그려 넣어 뒤따르는 운전자들의 주의를 각성시키는 효과를 노리는 경우도 있고 쓰레기 불법투기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 설치하는 경고판에 사람의 눈동자를 그려 넣어 불법투기를 심리적으로 예방하려는 지자체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눈동자를 마주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쉽게 공격할 여지를 줄여준다. 권투선수들이 시합 전에 서로 마주 보고 눈싸움을 벌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사자를 비롯한 맹수는 물론이고 물까치가 뒤에서 공격하는 것은 반격의 기회 없이 유리한 위치에서 상대를 쉽게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는 쓰레기를 쉽게 버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풍경화가인데 특이하게도 그림 속 인물들은 늘 뒷모습만 보여준다. 그의 그림 속 뒷모습들은 외롭고 쓸쓸하다. 어쩌면 뒷모습은 약하기 때문에 무방비하며 쓸쓸하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애잔하면서 그립기도 한 것이 뒷모습이다. 모든 이의 마지막 모습은 모두 뒷모습이다. 헤어질 때면 우리는 항상 뒷모습을 남기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외면이나 배신을 뜻하기도 하지만 나의 약한 곳을 흔쾌히 내어줌으로써 사랑이나 믿음을 보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개들은 주인 혹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등을 기댄다고 한다.
예닐곱 살 무렵이었다. 시골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할머니와 함께 마을 이웃집으로 마실을 나갔다. 밤늦게 돌아올 때 일부러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달라 조르곤 했다. 할머니의 등에 업혀 어두운 밤길을 지날 때면 귀신 이야기도 짐승의 울부짖음도 무섭지 않았다. 체취가 은은히 나는 까슬한 등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꼭 감으면 정겹고 편안했다. 힘들여 나를 지탱해 주는 그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으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흠뻑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등 너머 보이던 별들의 반짝임이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아련하다. 할머니는 오래전 따스하던 뒷모습만 남기고 저 먼 별자리 어딘가로 떠나셨다.
꿈을 향해 생존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기 바빴던 힘 좋던 청년시절의 나의 등도 어느새 할머니의 등처럼 점점 굽어가고 있다. 앞만 바라보고 앞만 보여주며 달려왔던 나의 등에 실려있던 무거운 짐들을 이제 내려놓자. 두 눈 부릅뜨고 앞모습으로만 보낸 바쁜 일상 속에서 스스로 짊어졌던 모든 굴레도 이제 내려놓자. 나약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어리숙한 나의 등을 숨김없이 그냥 내밀자. 그래서 마음 약하고 힘든 누군가가 편하게 기댈 수 있게 나의 따스한 빈 등을 말없이 그냥 내어주자.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 위로 새들의 노랫소리 울려 퍼지고 별이 하나 둘 켜지는 정원에서 물까치는 뒷모습을 보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끼들도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