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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야 산다

by 힉엣눙크

자동차를 타고 들판을 지날 때였다. 도로변에 “무야산다”라고 적힌 식당 간판이 눈에 띄었다. 너른 들판 한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그 식당은 유명한 맛집도 아니고 경관이 좋은 곳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작고 흔한 백반집이었다. 그 식당의 상호가 재미있으면서도 오래 여운을 끌었다. ‘무야’는 ‘먹어야’의 경상도 사투리다. 즉, ‘먹어야 산다’라는 뜻이다. 간명하면서도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방송이나 인터넷은 물론 우리 일상생활은 온통 음식이나 맛집이 대세다. 이 모두는 사실 식도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단 평야에 서 있는 그 식당은 생뚱맞게 생존을 얘기하고 있었다. 정색하며 말하는 농담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쓴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당신은 살기 위해 먹나요? 먹기 위해 사나요?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란 말을 서로에게 농담처럼 물어보기도 한다. 그와 함께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란 말도 떠오른다. 이 모두는 사실 먹고살 만할 때 나올 수 있는 얘기다.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은 차마 할 수 없는 한가로운 말인 것이다. 기본적인 생존조건이 갖춰진 사회에서 제기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조선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민초들은 배고픈 테스형을 운위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춘궁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배를 곯아 죽음의 강에 던져져야 했다. 끈질기게 매달린 목숨줄을 어찌하지 못해 배고픈 돼지처럼 나무껍질을 벗겨 먹을 때였다. 죽지 못해 먹었고 먹지 못해 죽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난 1950년대까지도 보릿고개는 남아 있었다. 육십 년대 말에 태어난 나는 운 좋게도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했다. 일부러 밥을 안 먹은 적은 있었지만 양식이 없어 굶어본 기억은 없다. 아! 물음에 대한 대답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먹기 위해 살아온 배부른 똥돼지였던 것 같다.

굶으면 죽는다.

‘먹어야 산다’는 말은 곧 ‘굶으면 죽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않고 3일을 못 버티고 음식을 안 먹으면 30일을 못 넘긴다고 한다. 모든 생명은 생존을 위해서 물과 음식을 필수로 한다. 기아를 벗어나게 된 인류의 대부분은 평소 이러한 진실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거의 없다.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2003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해 단식 중단을 종용하면서 했다던 유명한 말이다. 단식은 곧 죽음을 담보로 하는 시위이자 강렬한 의사표현이다. 그래서 아이나 어른이나 힘없는 사람이나 심지어 힘 있는 사람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단식을 감행한다. 단식은 투쟁의 수단으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대표작 <메두사호의 뗏목>은 1816년에 발생한 메두사호 좌초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높은 파도가 곧 덮쳐 조각날 듯 불안한 뗏목 위에 죽은 자와 산자가 뒤엉켜 있고 수평선 너머 지나가는 배를 발견하고 살려달라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다. 강렬한 명암대비와 어두운 색채는 좌절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군상들을 더욱 비극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1816년 좌초한 메두사호를 타고 있던 150여 명이 생존을 위해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뗏목에 몸을 실었다. 2주간 표류하다 우연히 지나가던 배를 만나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들은 불과 15명이었다. 표류 기간 동안 생존하기 위해 약한 자를 살육하고 인육을 먹는 끔찍한 일들이 뗏목 위에서 벌어졌다고 생존자들이 증언하면서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사건이었다. 굶주림으로 생존의 극한까지 치달은 인간에게 윤리나 도덕, 인간다움은 배달된 짜장면을 덮고 있던 랩 비닐보다 못한 것이었다. 굶주림은 사람을 참으로 비참하게 만든다.

밥을 먹고 산다는 것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김훈 작가는 말한다. ‘다시 거리로 나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고 밥을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는 인간의 비애를 술회했다.

공단 옆 들판에 서 있는 그 식당 상호를 지은 사람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도 그것은 출근을 위해 숙취를 이기고 일어나 마주한 밥상에서 느꼈던 김훈 작가의 비애처럼 밥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떠올려보게 만드는 뼈를 때리는 한마디인 것이다.

운 좋은 유전자 조합과 운 좋게 이어받은 유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얻게 된 학벌과 힘 있는 지위를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적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또 내가 남들 놀 때 못 놀고 남들 잘 때 못 자고 몇 년 고생해서 몇 점 높은 점수받아 합격한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와 똑같은 일을 할지라도 뚜렷이 차별해야 하며 그렇게 평생을 우려먹는 것이 당연한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위험한 일 더러운 일은 힘없는 사람에게 떠넘기고 생명을 잃어도 나 몰라라 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공부 못했으니 그런 일이나 하지"라며 면전에서 뇌까리는 무책임하고 무개념한 사람들도 적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힘 있는 사람이, 머리 좋은 사람이, 조그마한 차별을 획득한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 힘없는 사람을 잡아먹는 메두사호의 뗏목 같은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자식이 뒤처져 힘없는 사람이 돼 설움 받거나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지옥 같은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없는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다.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먹자. 어서 먹고 힘내자...” 아픈 아들 머리맡에 죽을 쑤어온 엄마가 나직이 일깨우는 듯한 그 말이 지방의 어느 공단 너른 들판에는 위로처럼 무심히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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