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2

by 힉엣눙크

새해를 시작하면서 운 좋게도 장기교육 대상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지금은 직장이 아니라 교육을 주관하는 곳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업무에 대한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없는 나날들이 이어지니 정말 홀가분합니다. 마치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교육과정 중에 각자 자유주제로 20분간 발표하는 피어 코칭 시간이 있었습니다. 단상에 서서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1분도 아니고 무려 20분 동안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게 다가왔고 두렵기까지 했었습니다. 나의 직업 자체가 나서서 오래 발표해야 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교육을 괜히 신청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습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일단 주제부터 정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얘기해야 할까.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을 발표하는 것이 덜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것은 분명했기에 큰 고민 없이 정원을 주제로 결정했습니다.


막상 얘기를 하려니 지난 10여 년의 정원 가꾸기 경험과 지식이 남에게 설명해줄 만큼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원을 사랑하고 정원 가꾸기를 실천해 왔지만 정작 깊이 있게 공부하지도 않았고 주마간산식 주먹구구식으로 지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한심스럽기도 했습니다.


발표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생각은 중구난방이었으며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 막막했습니다. 먼지가 쌓여있던 책을 뒤지고 자료를 검색했습니다. 청자이면서 평가자인 교육생들에게 맞는 적정 수준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정원 만들기의 학술적, 기술적, 전문적인 내용은 능력 밖이라서 걸러내야 했습니다. 정원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과 경험에 초점을 맞춰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파워포인트를 준비했습니다.


발표 당일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여서 얘기했습니다. 그들의 발표 점수를 매기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매겨질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점차 나의 발표순서가 다가올수록 가슴은 두근대기 시작했습니다. 이까짓 발표가 뭔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잘한다고 별스런 이익이 생기는 것도, 잘못한다고 단두대에서 목이 날아가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참 한심스러웠습니다.


무대에 서고 30명이 넘는 교육생들의 '어디 한 번 보자'는 듯 반짝이는 눈망울들이 일제히 나의 얼굴에 꽂혔습니다. 심장은 요동쳤고 손과 몸이 떨렸습니다. 생각은 차분해지자고 나에게 마구 소리치고 있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고 미쳐 날뛰고 있었습니다. 준비한 파워포인트를 시작하자 점차 안정을 찾았다가 다시 떨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나의 발표 제목은 ‘정원과 삶’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파워포인트 첫 화면, 까만 밤하늘에 별들만 초롱초롱 빛나는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떨리는 내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강의실을 울렸습니다.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그의 명저 ‘코스모스’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우리 몸의 DNA를 이루는 인과 질소, 치아를 이루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맛있는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등 이런 원소들은 지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별들이 살다 죽다를 반복하며 치른 핵융합을 통해서만 생성될 수 있는 원소들이라고 합니다. 초신성이 사멸하면서 흩뿌려진 물질이 우리들 몸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세이건은 우리가 별의 자녀들이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 현대인들은 자연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하며 삽니다. 심지어 그러한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죠. 우주와 자연의 일부이며 그러한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지만 머리로만 생각할 뿐 가슴으로 느끼는 경우는 드뭅니다.


정원을 가꾸면 내가 자연의 일부이고 그 순환의 한가운데 있는 작은 존재임을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잊고 지내던 나의 실존성을 확인하고 진정한 나에 관해 무의식적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원이란 바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정원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꽃과 나무를 보면 미소를 짓고 행복한 감정이 드는 건 왜일까요? 우리는 원시시대부터 자연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문명을 일으키고 도시화를 진행하면서 자연과 멀어지자 생활공간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의 벽화에서 정원을 그린 그림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인류의 정원은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은 정원을 가리킵니다. 서양인들에게 정원은 잃어버린 낙원을 지상에 구현하려는 시도이기도 하고 동양인들에게 원림이란 무릉도원이나 이상향을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왜 정원을 조성하는 것일까요? 꽃과 나무, 자연과 함께하려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자 열망이기 때문입니다.


“정원은 예술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정원에 대하여’란 그의 저서에서 “정원은 인간 정신에 가장 큰 청량제여서, 정원이 없다면, 궁전과 건물은 조잡한 작품에 불과할 뿐. 예의 바르고 우아한 시대라면 사람들은 위엄 있게 집을 짓고 섬세하게 뜰을 가꿀 것이다. 원예가 마치 최상의 예술 이기라도 하듯이.”라고 얘기했고,

미국의 정원 디자이너이자 유명 원예 전문가인 프렌 소린은 “나는 원예가 우리 모두의 내면에 파묻혀 있는 창조성을 발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원을 조성하는 것은 자연을 모방하는 행위이자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이상을 자연이라는 캔버스를 빌려 그리는 창조적 예술이기도 합니다.


백인백색 같은 사람이 없듯이 사람마다 같은 공간에 정원을 조성한다고 할지라도 똑같은 정원을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내재된 미적 감성이 울릴 때 가능한 것이겠지요.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정원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예술가들입니다.


나의 파워포인트 화면은 ‘정원의 종류’로 넘어갔고 나는 자연식 정원부터 발코니 정원까지 사진을 차례차례 넘기면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처음 나를 소개할 때 내게 보내던 은은한 미소는 사라졌고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흥미를 느끼는 것인지 따분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화가 난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온몸이 떨려왔고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산속에서부터 아파트 베란다까지 거대한 대지에서부터 손바닥만 한 공간까지 우리의 삶 주변에 정원은 무수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정원은 꼭 주택 마당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무이든 다육이든 생활하는 공간에 식물을 들여놓고 당신의 삶과 함께 호흡한다면 그게 바로 정원이 아닐까요.


그때 일부 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다소 편안해졌습니다. 내 이야기가 그들의 공감을 조금은 얻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워포인트 화면은 영국과 일본의 정원을 소개하는 순서로 넘어가야 하지만 여기서 이만 글을 줄일까 합니다. 너무 길어지면 지루해질 수 있으니까요. 다음 편지에서 나머지 내용도 들려드릴게요.


올 한 해 첫 달인 일월이 벌써 다 지나가네요. 하려던 일이 벌써 작심삼일로 끝났지만 계속 작심삼일을 하면 된다던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긍정적인 마음 잃지 말고 올 한 해도 건강하세요. 그리고 항상 행복 가득한 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사진설명 : 2014년 영국 히드코드 매너 가든 입구에서 촬영)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