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요즘 나는 뭔가 설레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냐면 주남저수지 인근 마을에 이사를 온 지도 10여 년이 지났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많은 새들을 우리 집 현관 앞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적은 여태 없었기 때문이죠.
하늘에서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지붕에 닿을 듯 줄지어 날아가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 소리와 서로 끼룩이며 교신하듯 대화하는 소리를 집 마당 한가운데에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마치 비행장 인근에 도착해서 이착륙하는 항공기를 신기한 듯 올려다보는 여행객들처럼 말이죠. 철새 수십여 마리가 집 근처 마을 과수원에 상주를 하고 온 몸이 흰색으로 빛나는 큰고니 십여 마리가 마을 연못에 매일 찾아들고서부터입니다.
그처럼 새들을 가까이에서 구경하려면 좀 떨어진 주남저수지까지 찾아가야 했었지요. 우리 집 지붕 위를 낮게 날아다니거나 근처 연못에서 눈동자를 마주칠 정도로 그들이 다가온 건 정말 올해가 처음입니다.
반가운 손님이 어느 날 문득 초인종을 누르며 집에 찾아온 느낌입니다. 성탄절 캐럴 '산타 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에 빗대어 '철새들이 우리 마을에 오네' (“Wild Geese are coming to town.”)라고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들이 우리 생활 반경 안으로 들어온 것이 마치 축제가 열린 것처럼 행복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오래전 할머니가 제게 말씀해 주셨던 6ㆍ25 전쟁과 관련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당시 고향 마을은 전선과는 멀었기에 전쟁통에서도 별다른 피해를 입은 적도 없었고 한 번도 인민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만다행스럽게도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뚜렷하게 기억하고 계셨던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전쟁을 실감하게 된 것은 가족 단위로 보따리를 이고 멘 피란민들이 마을 근처에 몰려왔을 때였다고 합니다. 퀭한 눈으로 야산에 자리를 잡은 실향민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굶주리고 지쳐 있었지만 심성 착하던 그들이 안쓰러워서 할머니는 당신도 어려운 처지였지만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곤 했다고 기억하셨습니다.
그 피난민 중에 고아 아이가 하나 있었답니다. 할머니는 밤톨처럼 매끈하게 잘 생기고 영리한 아이였다고 기억하셨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13살 무렵이었으니 그 아이는 아마 10살쯤 되었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그 소년과 산으로 들로 다니며 같이 놀고 공부도 가르쳐주곤 했는데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깨칠 정도로 똑똑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런 소년을 친동생 같이 아꼈고 그 소년도 형처럼 너무나 잘 따라서 나중에는 서로 형 동생 하며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워졌다고 했습니다. 재워주고 입혀주는 생활이 길어지고 식구처럼 되어가자 어른들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남자 형제가 없었던 아버지는 급기야 동생 삼아 집에 들이자고 고집했다 합니다.
3대가 한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살아가던 집에서 피붙이도 아닌 입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할머니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고심 끝에 가족으로 들이는 것은 안된다고 최종 결정하고 어느 날 그 아이에게 여비와 양식을 넉넉히 챙겨서 떠나보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몇 날 며칠을 울었다고 했습니다.
철새들이 오기 전에 우리 마을을 비롯한 주남저수지 도로변에는 누군가에 의해 여러 장의 현수막이 내걸렸었습니다. “국가습지보호구역 지정 결사반대”
주남저수지 철새 보호를 위한 필요성에 공감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곳에 터 잡고 살아온 주민들의 재산권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일부의 주장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수막이 내걸린 올해 공교롭게도 철새들은 마치 시위라도 하듯이 혹은 무엇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바싹 다가왔습니다. 6ㆍ25 전쟁 피란민들처럼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라는 전쟁통에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그들이 이제 근처 마을까지 찾아와 주민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습니다. 반질거리는 밤톨처럼 잘 생기고 영민하고 귀엽던 아버지의 의동생이 찾아왔던 그때처럼 말이죠.
도시화 산업화로 철새의 서식지는 점차 파괴되고 기후변화로 하나 둘 개체수가 줄어들어 멸종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 합니다. 한가로이 자연과 우리가 서로 공존하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한 시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의 결단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로 성큼 들어서 버린 것이죠. 싫든 좋든 시대와 세대를 잇는 화석연료 폭탄 돌리기를 이제 멈춰야 할 시점입니다. 공멸을 향해 타들어가는 심지가 이제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지요. 왜 나인가. 왜 우리 세대인가. 하소연하고 원망해도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모래시계를 바로 우리가 운명처럼 넘겨받았다는 것이 악몽같이 느껴지지만 지구의 환경과 우리의 문명은 지금도 현기증이 날 만큼 급속히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요.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아버지의 의형제였던 밤톨 같던 그 소년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을까요. 아마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영리하고 씩씩했으니까요. 철새처럼 찾아와 친동생 이상으로 정이 들었던 고아 소년. 그가 다시 떠나간 북쪽을 바라보며 울었다던 아버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 문득 의동생과 비슷하게 생긴 동년배를 보았다면 아마도 그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딘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인생을 조금은 더 훈훈하면서 아름답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란민처럼 우리 마을로 찾아든 철새들의 영롱한 눈망울과 생의 활력이 넘쳐나는 몸짓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봄이 오면 그들은 또 북쪽 어딘가를 향해 날아갈 것입니다.
언젠가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면 끼룩이며 힘차게 날갯짓하던 그들의 밝은 눈망울을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나의 가슴은 얼마간 따듯해지겠지요.
오늘도 바람이 차갑습니다. 하지만 이 겨울이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딘가에서 날갯짓하고 있는 당신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