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지에서 내가 1년간의 교육과정에 참여 중이며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정원과 삶‘을 주제로 파워포인트와 함께 발표한 내용을 일부 전해드렸었죠.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에 알려드린다고 약속했었는데 지금 이어서 소개해 드릴게요.
혼자 무대에 서서 30여 명의 시선을 받으며 준비한 자료를 20분 이내에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긴장을 가져올 줄은 몰랐습니다. 앞사람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더욱 긴장도를 증폭시켰는지도 모르지요. 무대에 서고 뭇시선이 쏟아지자 심장과 손, 그리고 온몸이 왜 그리도 떨리던지요. 어쨌든 정원의 종류까지 설명을 끝내고 준비한 파워포인트의 다음 화면을 넘겼고 '영국과 일본의 정원‘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띄워졌습니다. 다시 내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강의실을 울렸습니다.
“정원 하면 떠오르는 나라, 영국과 일본을 2014년과 2017년 각각 방문하고 돌아온 저의 경험담을 여러분께 간략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중국과 한국 VS 일본
정원(庭園)이란 말은 일본이 서양의 가든(garden)을 번역하면서 만든 단어라고 합니다. 중국과 한국은 정원을 원림(園林)이라고 불러왔다고 합니다.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집이나 정자를 적절한 장소에 배치하고 인위적인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국과 한국의 정원문화 즉 원림이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정원문화는 서양처럼 담장 안쪽에 인공적인 자연을 조성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는 ‘도쿄의 명소’ 편에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원림은 서양이나 일본의 정원문화와는 콘셉트가 다르다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정원
일본의 정원 양식 중 하나인 고산수(枯山水) 양식(돌과 백사로 이뤄진 정원)을 대표하는 료안지 정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명한 정원입니다. 돌과 하얀 모래로만 이뤄진 단순한 정원이었습니다. 사찰 마루에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니 생각이 끊기고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적(禪的)이면서도 추상적인 아름다움이라 일컬어지는데요 나는 왠지 국내 오래된 고택의 정갈한 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대나무 비로 쓸어서 정갈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의 우리네 마당이 더 그리워졌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료안지에는 그 정원 말고도 오래된 목조건물과 나무, 이끼, 샘물이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곳이 곳곳에 숨겨져 있더군요.
2017년 이른 봄, 왕실 정원인 가쓰라리큐를 보기 위해서 나는 궁내청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했습니다. 한 번에 관람할 수 있는 인원도 제한되어 있었고 해설사의 인솔에 따라야 했지요. 일본어를 몰라 그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가쓰라리큐는 20세기 유명한 건축가인 독일의 브루노 발터가 “현대 건축이 추구하는 바가 여기 벌써 구현되어 있다”라고 극찬하였다 합니다.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양식(연못을 중심으로 돌아볼 수 있는 정원)이라고 하는데 규모는 컸지만 단순하면서 소박하고 인위적이면서 깔끔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외 교토에서 금각사, 은각사, 청수사, 천룡사, 무린안, 시센도 등 정원으로 유명한 사찰과 주택정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일정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 일본 정원은 너무 인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둘러본 일본의 정원은 거부감이 그리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네 관공서 뜰이나 공원의 인공적 양식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였을까요. 어쩌면 우리 정원이 일정 부분 일본의 정원문화에 영향을 받아서였을까요.
특히 3월 초순임에도 바닥에 깔린 이끼의 초록과 돌 그리고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연출하는 장면은 마치 천년의 숲을 보는 듯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그중 천룡사와 무린안의 정원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일본의 정원은 자연처럼 느껴지는 정원이 아닙니다. 자연을 모방하였지만 또 다른 세상을 지향하고 있었고 색다른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마치 참깨를 체로 걸러서 알맹이만 예쁘게 배치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일본의 궁궐, 사찰과 신사는 물론이고 길을 지나다 우연히 들른 시골의 주택 마당에서도 크거나 작거나 정원을 성심껏 가꾸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그들의 정원문화와 그러한 전통을 고수하고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열정. 일본의 정원을 왜 서양사람들이 인정하고 도입하려 하는지는 그들의 뜨거운 정원 사랑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정원
2014년이었습니다. 영국 정원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정원까지는 대중교통편이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사전에 렌터카를 예약하고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차선과 운전석이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여서 여행가방 이외에 걱정도 한가득 얹어서 갔습니다.
영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직업은 무엇일까요? 공무원, 교사, 의사, 판사? 아닙니다. 정원사입니다. 보통의 서양인들이 일광욕을 좋아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해가 나면 기다렸다는 듯 잔디밭에 눕고 카페에서는 실내 쪽보다는 야외 테라스가 인기라고 하죠.
영국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영국 구인광고에서 큼지막하게 써붙이는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Outdoor Work” 즉 실외근무 또는 외근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몰린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와는 반대여서 흥미로웠습니다. 직업에 귀천을 따지지 않고 급여 차이가 적다는 사회ㆍ문화적 요인 때문이겠지요.
영국의 정원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높아서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들도 있고 영국을 대표하는 정원 관련 경연대회인 첼시 플라워 쇼에서 최고의 정원에 선정된 디자이너는 여왕이 왕실로 초청한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실내에 앉아서 근무하는 골치 아픈 사무직보다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햇볕을 쬐며 활동할 수 있는 외근직 선호 경향과 그들의 자연 사랑, 그리고 정원사에 대한 높은 사회적 인식이 정원사를 인기직종으로 부상시킨 이유겠죠.
정원이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으며 정원 관련 프로그램이 텔레비전 골든타임대에 방영될 정도로 서민에서부터 왕실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라 영국이 정원문화로 활짝 꽃 피우고 있습니다.
영국은 온 국토가 초원입니다. 고대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가 융기한 섬이어서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한 결핍 속에서도 정원문화를 꽃피운 것이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결핍이 그 나라의 정원문화 융성의 한 요인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히드코트 매너 가든과 코츠월드
히드코트 매너 가든은 영국의 10대 정원에 꼽힐 만큼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로렌스 존스톤이 20세기 초에 40년 이상에 걸쳐 개인정원으로 조성하였고 1948년 건강문제로 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하고 나서야 일반에 공개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극찬과 함께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정원이었답니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나무들이 벽처럼처럼 경계를 나눠서 방문객은 마치 각각의 방을 드나드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는 7월이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첫 번째 정원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달콤하면서 매혹적인 꽃향기에 압도당했습니다. 정원이 우리에게 마치 ‘여기는 별세계야’라고 선언이라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헬리오트로프가 한가득 피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기습적인 선방을 맞고서 그로기 상태에 빠져버린 복싱선수처럼 정원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에 뭉근히 빠져버렸습니다. 다음 방으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고 다른 방은 잔디가 끝없이 펼쳐졌으며 또 다른 방은 초록의 잔디가 양탄자처럼 가운데를 가로 지르고 있었고 양옆으로 꽃들이 도열해 있어 내가 마치 왕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방으로 들어설 때마다 각각의 세상이 우리의 예상을 깨고 펼쳐지면서 연이어 충격을 안겨주는 그런 정원이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그 정원을 떠나서도 한동안 여운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영국에서 시싱허스트 가든, 큐가든, 리즈성 등도 둘러보았지만 히드코트 매너 가든만큼 충격적인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정원들이 화려하고 세련된 아웃복싱을 구사한다면 히드코트 매너 가든은 마이크 타이슨처럼 묵직한 핵주먹을 날리는 인파이터 가든이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저는 지금도 얼얼합니다.
히드코트 매너 가든은 코츠월드라는 지역에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지역 1순위를 차지하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땅값도 높다 합니다.
방문해보니 예상과 달리 으리으리하고 번쩍이는 집들은 보이지 않고 수수하고 오래된 돌집들만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법으로 신축한 거대한 저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전통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영국의 정원은 후정(後庭) 즉 집 뒷마당에 조성한 정원이 사실상 중심입니다. 그곳에서 프라이버시도 보호받고 휴식을 취하거나 파티를 벌이기도 합니다. 후정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가정집을 맘대로 들여다볼 수도 없고 우리는 건물 앞 화단을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자신들만의 특색을 살려서 예쁘게 가꾸어 놓았더군요. 집주인이 주로 즐기는 공간이 아님에도 말이죠. 이러한 그들의 배려문화가 코츠월드를 영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정원 이야기
파워포인트는 '나의 정원 이야기‘라는 문장을 크게 화면에 띄웠습니다. 기대에 찬 청중들의 눈동자가 화면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 목소리가 다시 강의실에 울렸습니다.
나와 아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헨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고 단순ㆍ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는 그들의 가치관에 공감하였습니다. 또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늘 동경했죠. 미디어를 통해 접한 미국의 유명 동화작가인 타샤 튜더의 정원을 부러워했고 여성의 몸으로 직접 그 넓은 정원을 가꾸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보며 용기도 얻었습니다.
우리가 주택 2층에 살 때였습니다. 베란다에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화분 정원을 꾸몄습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꽃과 나뭇잎을 바라보면 마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누가 봤다면 "화분이 왜 이렇게 많아"라고 했겠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마당에 정원을 조성하고 싶다는 더 큰 꿈을 가졌습니다. 주말마다 부지런히 시 외곽을 다니며 매물로 나온 땅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 현재 살고 있는 땅을 우연한 인연으로 구할 수 있었고 집을 짓고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 1월부터 마당을 꾸미기 시작했죠. 우선 큰 스케치북에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아내와 나는 색종이를 오려서 교목이나 관목의 이름을 쓰고 이리저리 배치해보면서 정원을 설계했고 이후 땅을 파고 나무와 꽃을 심고 돌을 놓는 작업을 했습니다. 기계나 타인의 도움 없이 우리 부부의 힘으로만 하였습니다. 나는 직장을 다녀야 했으므로 주말마다 작업은 이어졌고 2년간은 온몸의 근육과 뼈가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별로 없을 정도였습니다.
화면은 나무와 풀이라고는 하나 없는 황톳빛 맨땅에서 멀리 누군가가 삽질을 하는 사진으로 바뀌었습니다. “저기 삽질하는 사람이 저입니다”라고 말하자 청중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자 새순을 틔운 나무가 들어서 있고 섬백리향의 보라색 꽃이 양탄자처럼 바닥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지 만 2년이 지난해 봄에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여기저기 가벼운 감탄사가 흘러나왔습니다. 다시 하얀 공조팝이 가든 핀 장면으로 화면이 바뀌자 모두들 ’와‘하고 탄성을 뱉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아내와 은달이가 정원에서 함께 있는 모습이었고 나는 우리 가족을 소개했습니다. 아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 주며 개인전을 3회 개최한 화가이고 지역 문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정원이 소재이고 그녀의 예술적 영감은 정원으로부터 얻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정원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덤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과정이 결코 후회스럽거나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즐거움과 보람 그리고 만족을 가져왔으니까요. 전원주택 구경한다고 찾아오는 친인척 및 지인들과 함께한 시간은 물론이고 정원이 예쁘다며 구경을 청하는 낯선 사람들과의 조우도 우리의 정원 가꾸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파워포인트 화면은 다시 전환되어 ’왜 정원인가?‘가 띄워져 있었지만 청중들의 얼굴에는 우리의 정원 이야기가 좀 더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운 감정이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이거나 관념적인 얘기보다는 개인의 사연이나 실제 경험을 더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수업 중인 선생님께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학생들처럼 말이죠. 다음은 왜 사람들은 정원을 가꾸고 있으며 또 가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해서 발표했던 얘기입니다.
왜 정원인가?
첫 번째, 정원은 치유이고 안식이며 재충전입니다.
18세기 말 벤자민 러쉬 교수가 원예활동을 통해 정신병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래 원예치료 분야는 현대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원예치료사라는 직업도 있습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끊임없이 나를 움직여야 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시간들이 힘들고 때로 귀찮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정원일을 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뭔가 치료되고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정원을 방문해서 즐기는 것만으로 손쉽게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는데 뭐하러 힘들게 가꾸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원을 가꾸는 노동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치유와 안식 그리고 재충전의 기회를 얻습니다.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을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정원은 철학적 성찰을 고양합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는 차트웰에 정착하여 직접 정원을 가꾸고 연못가에 오래 머무르곤 했다 합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그를 다시 수상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는 독일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명연설로 영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으며 마침내 조국을 승전국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차트웰 정원에서 보낸 사유와 성찰의 기간이 그의 내면을 더욱 강하고 깊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다음 장면은 한옥을 배경으로 매화꽃이 활짝 핀 장면으로 넘어갔고 화면 가운데 “저 매화나무에 물 주어라”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었습니다. 누구의 말이었을까요? 조선 유학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는 퇴계 이황 선생이 임종 시에 남겼던 마지막 말이었다고 합니다. 생전에 그의 매화 사랑은 각별했다고 합니다. 그의 고매한 정신과 높은 학식 그리고 철학적 경지는 그가 마지막까지도 놓을 수 없었던 매화와 정원에 대한 사랑의 힘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세 번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생활실천입니다.
전환된 화면에서는 양복을 입은 사람이 허벅지까지 잠기는 바닷물 속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의 외교장관입니다.
투발루는 9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2개의 섬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이미 바닷물 속에 잠겼다고 합니다. 기후위기로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의 연설 영상이 지난해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수몰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들 차례가 될 것입니다.”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노력은 그 자체로 탄소를 줄이는 행위이므로 투발루와 지구는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를 살리는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실천대안이 될 것입니다.
네 번째,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게 할 촉매제입니다.
지난해 봄 미국의 저명한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17개 선진국 1만 9천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질문은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선진국 국민들이 꼽은 압도적 1위는 '가족‘이었습니다. 이어서 '직업‘ 그리고 '건강' 혹은 '물질적 풍요‘ 등이었죠.
그런데 '물질적 풍요‘를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1순위로 꼽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 뉴스를 접하고 다들 슬픈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들이 '물질적 풍요‘ 즉 '돈'을 인생을 의미 있게 하는 첫 번째로 손꼽았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건강', 그리고 세 번째가 되어서야 '가족'이었습니다.
한국사회의 배금주의, 생존주의, 물질주의적 경도화 현상은 다양한 연구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이면에는 국가 행복지수 최하위, 자살률 1위, 빈부격차 심화 등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원인으로 사회안전망 부족 및 지나친 경쟁사회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행복한 삶, 경쟁보다는 조화에 보다 가치를 두는 삶이 우리 사회 전반에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경제 성장 하나에만 목매고 바쁘게 달려온 관성의 힘이 워낙 큰 데다 이처럼 얻게 된 경제성장 동력을 혹여 꺼뜨리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나와 내 자녀가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다들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만병통치약은 결코 아니지만 정원을 가꾸는 삶은 경쟁과 스트레스로 지친 우리 개개인들에게 위안과 변화의 힘을 줄 것이며 나아가 더욱 여유 있고 살기 좋은 공동체로 탈바꿈시키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알려져 있지요. 우리 대부분의 인생들이 그러하지 않던가요? 그런 우리들에게 던지는 그의 위트 있는 조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별로 돌아갈 것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살다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순간 그리고 오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겠지요.
베란다 정원이든 손바닥 정원이든 여러분의 행복을 향한 여정에 '정원과 함께하는 삶‘을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마지막 말이 끝나고 파워포인트도 끝이 났습니다. 길게 느껴졌던 20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엄지 손가락을 척 내밀어 보였습니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홍매화 한송이가 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겨울 속으로 봄의 전령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제 봄이 머지않았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도 조만간 사라지겠죠.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인용해서 유명해졌다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유대 경전 주석지인 미드라시에 나온 얘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다윗왕이 큰 전쟁에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치 않고 큰 절망에도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경구를 새긴 반지를 만들도록 반지 세공사에게 명했습니다. 세공사는 반지를 거의 완성했지만 글귀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솔로몬 왕자에게 부탁했습니다. 그가 일러준 글귀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다는군요. 다윗왕이 흡족해하며 큰 상을 내릴만하지요.
정원 가꾸기의 8할 이상은 풀뽑기입니다. 잡초를 뽑는 일은 끝도 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돌아서면 다시 돋아나 있으니까요. 지치고 힘들고 짜증 나고 지루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 살아가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들이 그러하듯 말이죠. 그래서 잡초와 씨름하다 보면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고 다시 올리던 시지프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 잡초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져 정원 가꾸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래 정원일을 해오는 사람들은 압니다. 풀을 다 뽑아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뽑는 그 과정에만 온전히 주의를 기울일 때 마음은 평온해지고 더욱 깊어진다는 것을 말이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부대끼는 일은 이처럼 힘들지만, 온전히 그 과정 속에 몸을 맡기고 정신을 기울이면 희한하게도 내가 가꿔지고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신비로운 일이지요.
즐거움과 슬픔과 분노와 욕망이 교차하는 생의 한가운데 바삐 살아가고 있는 당신. 기회가 닿는다면 그대에게 호미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서 말이지요. “풀 뽑을 땐 욕심 버리고 딴생각하지 말 것”
쓰다 보니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인생이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