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노래는 문득 들려오는 김광석이나 유재하의 목소리를 접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장르는 달랐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젊은 날 요절했다는 것과 20~30대 내 감성을 물들이고 이제 추억의 한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잊고 지내던 등려군(덩리쥔)을 얼마 전 TV 앵커를 통해 들었다. 남측 공연단의 평양공연을 앞둔 앵커 브리핑에서 "그의 노래는 양안 간 해빙을 불러오는 봄바람 같았다. 중국 당국은 이를 경계했다. 소용없었다. 불법복제 테이프가 2억 개 넘게 팔렸고 감시하러 다니는 공안들마저 덩리쥔의 노래를 들었다. 시진핑 주석마저도 젊은 시절 노래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고백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왜 그녀는 중화권은 물론 동남아와 일본 등지에서 그토록 사랑을 받았던가? 누군가는 책에서 “그녀의 노랫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하며 종종 속삭이듯 절제되어 있다. 그 당시 중국 대중음악계에서 이상적인 가수로 인정받았다.”라고 언급했다. 그녀의 노래에는 화려한 기교도 3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도 없다. 다만 간절하고 우아하다. 목에서 울리는 얕은 소리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내쉬듯 너무나 자연스럽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소리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그녀의 존재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 그러하듯이 나도 장만옥·여명 주연의 영화 ‘첨밀밀’을 보고 그녀를 알게 되었다. 그 영화도 노래 제목도 모를지라도 한 번 들어본 사람은 다들 익숙한 멜로디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하여 들리던 그 노래,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노래가 바로 그녀의 대표곡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이다.
연인의 노래에서 달이 등장하는 것은 고래로 익숙한 장면이다. 가로등도 영화관도 없던 그 옛날, 연인들은 달빛 아래가 아니면 어디에서 밀어를 나누었겠는가. 이제 카페, 영화관 등 연애를 위한 장소는 많아졌지만 상대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속삭이기에는 지금도 달빛은 유효하다.
수줍은 처녀는 왜 자신의 마음을 달빛에 비유했을까? 달은 변하므로 내 사랑도 저 달처럼 변할 것이라고 노래한 것은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없지만 저 환한 달과 같이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사랑의 고백 이리라. 그래서인가 인류에게 달빛은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드뷔시도 이태백도 달빛을 사랑했다.
그녀의 노래는 목련꽃이다. 하얗게 떠오르는 목련꽃은 장미의 화려함에 비견할 수 없지만 단아하게 피어난 달빛 꽃봉오리는 한겨울 황량하던 풍경을 환하게 밝힌다. 그녀의 노래는 내게 그런 의미로 다가오는 것들 중 하나이다. 힘든 시절 아내를 알게 된 후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진 우리의 오랜 만남과 함께 생각나기 때문이다.
삶의 고갯길에서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 멀리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처럼, 노을 속에 울려오는 먼 종소리처럼 잊혔던 추억이 아련하게 다가와 가슴 한 자리가 저려온다면 영화 ‘첨밀밀’의 마지막 장면처럼 아내에게 미소를 지어줘야겠다. 비록 “왜 뭐 묻었어?”란 대답이 돌아올지라도.
2018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