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개가 있다. 이름은 ‘은달’이다. 개 이름을 묻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열에 아홉은 “응달이”, 혹은 “온달이”라고 달리 불렀다. 아내가 지었는데 처음 들었을 때 내심 못마땅했다. 어쩐지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차라리 미달이라고 짓지 그래”하고 묻는 내게 아내는 영어로 ‘silver moon’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럴듯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권력은 벌써 아내에게 넘어가 있었다.)
강아지 때 데려온 지 만 5년이 넘었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불혹이다. 같이 늙어간다. 그런데 여전히 철이 없고 말을 잘 안 듣는다. 주인을 닮았나 보다.(안주인은 제외다.) 나는 은달이에게 데면데면하는데 반해 집사람은 은달이와 너무 친하다.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샘이 난다. 때로 소외감을 느낄 정도이다.
은달이와 소통은 주로 간단한 단어를 통해서 한다. 때로는 수신호나 휘파람도 곁들인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가르친 것 외에 듣고 저절로 알게 된 단어까지 포함하면 20여 개는 넘을 것이다. 소통이라는 게 단순한 명령어들을 겨우 따른다는 정도이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수준은 아니다. 단박에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대개는 두 번 세 번 부르고 억양과 눈꼬리까지 올려야 마지못해 따른다. 그런데 한 번에 하는 경우도 있다. 간식을 손에 쥐고 있을 때다. 은달이를 가르치다 지칠 때쯤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가 은달이를 사람으로 만들려는 건 아닐까?”
그런데 최근 특이한 경험을 했다. 여느 주말 아침과 다름없이 산책을 시키려고 가슴줄을 매 줬다. 항상 허리를 숙여 위에서 내려다보며 매는데 그날은 어쩌다 보니 무릎을 굽히고 마주 보면서 개의 심장과 나의 심장이 같은 높이의 자세였다.(사실 그 녀석은 사람 덩치만 하다.) 그리고 걸어갔는데 약 10여 초 정도 은달이와 묘한 일체감이 느껴졌다. 개의 감정이 들리고 둘 사이가 막힘없이 시원하게 연결된 느낌이랄까 뭐 그런 상태였다. 영적 교감이라고 해두자. 말하고 보니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그 실체에 대해 증명할 길은 없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냥 현존했던 감각적 체험이었다. 은달이와 친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 경험이 있냐고.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희한했다.
이에 관해서 살펴보니 외국에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보통 수의사들이 이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슨 요술이나 영매의 초능력, 텔레파시 등속의 것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 직감을 키우고 이를 통해 동물과 교감하며 대화하는 일이라 한다.
직감은 직관, 육감(the sixth sense)이라고도 불린다. 언어가 발달하기 전 원시시대에는 우리 인류도 널리 활용하던 감각이었는데 진화하면서 점차 잊힌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중 한 명인 캐롤 거니는 직감을 ‘영적인 근육(spiritual muscle)’이라 표현했는데 누구나 훈련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고 한다.
직감은 과학적으로 명확히 설명되진 않는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최근 이에 대해 긍정적인 결과들을 발표하고 있다. 201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연구팀은 평균값 추정 실험 결과 직감의 적중률이 무려 90%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직감과 관련한 여러 연구들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한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그 유명한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용기 있게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이 진짜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부차적입니다.”고 역설했다. 언젠가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그의 동료가 소비자의 욕구를 조사해서 반영하자고 제의를 하자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할 때 여론조사를 하고 한 건 아니었다.”며 일축했다. 전기 작가 아이작슨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知力) 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애플의 신화는 잡스의 직감에 힘입은 바 크다.
얼마 전 직감을 통해 은달이와 나눈 대화의 시간 10초가 과연 사실이긴 한 걸까?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동물의 감정을 읽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있으며 훈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현관문을 나섰다. 꼬리 치고 혀를 내밀며 헥헥거리는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은달이'... 은달아 오래 오래 남아서 내 마음을 읽어줘.
2018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