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 화면 앞에서 강사는 빛이 비치는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설명을 했다. 스크린 앞으로 들어설 때마다 글자가 강사의 얼굴에 비쳤다. 얼굴에 글자를 타투한 듯 하기도 하고 혹은 신문지 위에 그려진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는 등 잠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그 모습이 오래전 기억을 소환했다. 아련하고 슬픈 느낌이 잉크 방울 떨어진 유리컵처럼 감정의 공간을 서서히 물들여갔다.
한겨울에는 집안에 있어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외투를 껴입고 있어도 추웠다. 말할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단열효과가 형편없던 주택구조 덕분이었다. 내게 겨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온돌이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로 온몸이 떨려올 때면 피난처를 찾듯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 몸을 파묻던 나를 떠올린다. 외출했다 돌아온 가족이 차가워진 몸을 이불속에 넣으며 몸서리를 치던 모습, 친구가 놀러 와서 나란히 배를 깔고 누워 시시덕거리던 모습, 먼 곳에서 온 친척들과 아랫목에 손발을 묻고 따스한 얘기를 나누던 모습들이 아련하다.
엄마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읽다가 엎드려 신문지에 낙서를 했다. 활자가 없는 여백 부분에다 눈, 코 그리고 얼굴을 그렸다. 그러면 우리도 그 옆에 누워 각자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보면 활자가 있는 곳에도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사람의 얼굴 위에 글자들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었다. 프로젝션 빛 속으로 들어간 강사의 얼굴에 그려지는 글자처럼.
우리 형제는 서로 제가 더 잘 그렸다고 싸우기도 하고 엄마가 그린 그림에 자신의 연필로 덧 그리기도 하고 광고사진 속 유명 배우의 이빨을 새카맣게 칠해서 앞니 빠진 개우지로 만들고는 낄낄거리며 웃기도 했다.
신문지에 그림 그리기는 추운 겨울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엄마와 우리 형제들의 놀이였다. 엄마가 그리는 인물들은 항상 정면을 보는 법이 없었다. 비스듬히 옆모습만을 그렸는데 커다란 눈망울이 어디론가를 바라보는 모습은 조금 슬프게 보였다. 그 모습은 우리가 자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 형제들은 어른들이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걱정을 엿들으며 투병생활이 길어지고 있던 엄마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오기도 하고 종종 어지러워 누워있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가만히 누워있을 때면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저 막막하고 두려웠다. 고요히 잠을 자는 엄마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모든 근심과 걱정 그리고 투병의 고통이 스르르 떠나버린 것처럼. 그러면 나는 엄마가 숨을 쉬는지 가슴과 배의 오르내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고 움직임이 있을 때라야 안도를 했다. 어느 날이었다. 가만히 살펴도 엄마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를 마구 흔들었다.
“엄마! 엄마?”
그때 깊은숨을 쉬며 엄마가 깨어났다. 크게 뜬 눈으로 왜 깨웠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안도하는 표정을 한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잠시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엄마... 안 죽어.”
나의 걱정이 한낱 기우였음을 증명하듯 건강을 회복한 엄마가 밝게 웃으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늘 그렸다. 고통의 날들이 엄마로부터 어서 빨리 사라져 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정해진 운명은 되돌려지지 않았다. 죽지 않는다고 얘기하던 엄마는 이 세상에 자신의 고통을 벗어두고 우리도 남겨두고 멀리 떠났다.
아침 운동을 나갈 때면 현관 안쪽에서 자고 있는 은달이를 지나치게 된다. 이전에는 내가 신발을 신는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녀석이 이제 나이가 들더니 잘 깨어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그냥 놔두고 나 혼자 나서기도 했지만 어제는 녀석과 함께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살며시 앞발을 쓸어 보았다. 이전 같았으면 깜짝 놀라며 일어나던 녀석이었다. 다시 살짝 쓸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 나는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은달이의 어깨를 세게 흔들었다.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들고 힘겹게 일어났다. 꼬리를 흔들며 현관문을 나서는 녀석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당에 서서 불그스름하게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쳐다보니 남동쪽에 아주 크고 밝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도 샛별일 것이다.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동녘 하늘에서 홀로 맞이하는 밝은 별은 무언가 새로운 힘을 내게 불어넣어 줄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른 새벽 정화수를 떠놓고 샛별을 바라보며 간절한 무언가를 기원했다던 옛사람들의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죽어서 별이 된다면 나는 샛별이 되고 싶다. 새벽하늘에서 반짝이며 외롭거나 슬픈 누군가를 위로하는 작은 별이 되고 싶은 것이다.
엄마와 우리 형제들이 온돌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신문지에 얼굴을 그리던 추억이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문득 떠올랐다. 그 시절이 어떠했는지를 누군가 물어본다면 힘들고 외롭고 원망이나 슬픔으로 기억되는 시절이 결코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싶다. 지나간 추억을 미화하는 인간의 습속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티끌 같은 인생 속의 찰나 같은 시간, 그 시간의 기억이 애틋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샛별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문득 내 손을 따뜻한 혀가 살며시 핥아 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늙은 은달이가 내 다리에 기대어 왔다. 점점 밝아지는 하늘에서 샛별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