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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서 울다

by 힉엣눙크

벚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듯 벚나무들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다. 여기는 한반도의 남녘 끝. 제주도에서 날아온 꽃의 성화를 이어받아 바야흐로 자연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십오 년 전쯤 내가 도심에 살던 때였다. 아파트 앞에 수영장이 있어 새벽 수영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가던 길이었다. 지하도를 건너 보도를 걸었다. 줄지어 늘어선 벚나무 가로수는 끝도 없이 이어지며 눈부시도록 하얗게 아침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는 꽃샘추위로 쌀쌀해서 느긋한 꽃구경은 뒤로 미룬 채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르던 중이었다.


저만치 떨어진 벤치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남루한 행색의 중년 여인이었다. 짙게 그을린 얼굴, 시커먼 손, 찌든 옷과 엉킨 머리. 그녀는 노숙자였다. 벤치 위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고 여인은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말없이 바라보던 여인이 갑자기 ‘꺼이꺼이’ 울었다. 늙은 암탕나귀의 울음 같았다. 그 옆을 지나치며 살펴보니 봉지에는 하얀 밥과 반찬 등이 차갑게 뒤엉켜 있었다. 영하의 아침 공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여인의 입김은 벚꽃처럼 하얬다.


깊이 파고드는 꽃샘추위에 그녀는 부들거렸을 것이다. 길고 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았지만 끈질기게 고통을 주는 추위가 지긋지긋했으리라. 아니 모진 계절의 수레바퀴에 짓밟히고도 깊게 뿌리내리는 민들레처럼 끈질기게 적응하며 살아남은 자신의 몸뚱이가 저주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일조량과 기온의 정합으로 벚꽃이 피어나듯 버려진 밥과 만발한 벚꽃 앞에서 그녀의 몸 깊숙이 메말라 있던 설움이 툭 터져 나왔던 것이리라. 그녀는 오래된 벚나무 옆에서 길고 하얀 울음꽃을 처연하게 피워내고 있었다.


따뜻한 아침밥 한 그릇 사드시라 도와주고 싶었지만 수영장을 다녀오던 내게는 지갑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울음소리가 잔향처럼 남았다. 그때 작은 도움이라도 전했더라면 면죄부를 산 것처럼 쉬 잊혀졌을까. 세월이 오래 지났지만 벚꽃이 필 때면 간혹 그녀의 울음이 생각나곤 한다.


얼마 전 영어수업 시간에 원어민 강사가 물었다. 우크라 전쟁에서 여러분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초급 수준의 만학도들 중에 몇몇이 문장 대신 단어로 얘기했다. “oil(석유)”, “export(수출)”, “economic growth(경제성장)” 그러자 강사는 재차 물었다. “anyone else?” 나는 머릿속에 맴도는 무언가를 단어로 내뱉지 못했다. 아무도 내 생각을 대신 얘기해 주지도 않았다. 대답이 없자 푸른 눈의 강사는 다른 주제로 화제를 넘겼다.


수업이 끝나고도 나는 목에 가시가 박힌 듯 답답했다.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보도사진과 SNS 영상 등을 보면서 느꼈던 것. 본능처럼 솟아나던 감정들. 석유, 수출, 경제성장보다 앞서서 생각났던 것. 그건 바로 “sympathy(연민)” 그리고 “humanity(인류애)”였다. 나의 답답함은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바보처럼 말하지 못함 때문이었고 아무도 그 단어를 먼저 말하지 않던 상황 때문이었다.


봄날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벚꽃을 바라보면서 거지 여인과 팬데믹 그리고 우크라 전쟁을 생각한다. 벚꽃 아래 울던 여인은 지금 어디를 헤매는지 알 수 없다. 그녀의 울음은 아마도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느낀 것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해야겠다.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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