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는 잃을 수도 찾을 수도 없다.

by 힉엣눙크

하얗게 일렁이는 억새밭으로 둘러싸인 제주도의 농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아름다운 오름과 소들이 노니는 들판의 경관을 사진에 담고 싶어 주머니를 뒤졌다. 어찌 된 일인지 휴대폰이 잡히지 않았다. 상의 안쪽 바깥쪽 그리고 바지 주머니 여기저기를 두 번 세 번 확인했는데도 없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렸구나.’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온몸의 신경이 바싹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순간 내가 다녀왔던 장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어디에 빠뜨리고 왔는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한편으로는 찾지 못한다면 치르게 될 불편과 번거로움에 관한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불안으로 끓어 올랐던 내 마음은 곧 썰물처럼 차분해졌다. 휴대폰은 오래돼서 바꿀 때도 다 돼 가는 데다 요즘 연락처 등을 자동 백업해 주는 기능이 있다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옆 동료에게 내 휴대폰으로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상대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굼부리 매표소 직원이었다. 화장실에 떨어져 있는 것을 젊은 청년이 주워서 갖다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안도하고 또 그 청년에 감사했다. 관광버스의 동선이 산굼부리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이드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후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일행과 떨어져 아까 다녀왔던 곳이자 휴대폰을 잃어버린 그곳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가던 중 나는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는 삼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문득 삼십 년 전 이곳 제주에 홀로 왔던 내가 생각났다. 이십 대 후반,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방향키를 상실한 배가 풍랑을 만난 듯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비상구를 찾고 있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다음 날 무작정 공항으로 가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왜 제주도였는지는 모른다. 그저 낯설고 먼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었다. 신열처럼 온몸을 휘돌고 있던 불길하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세상의 마지막, 천길 벼랑 끝에 서서 바람결에 훌훌 떨쳐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새로운 희망의 길을 어디선가 찾고 싶었던 것이리라. 동화 ‘파랑새’의 남매처럼 나는 고통과 불안의 심연을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에서 행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려고 올랐던 깜깜한 성산 일출봉의 벼랑 끝 차가운 바람 속에 서 있었다. 어둠 속에 하늘과 바람과 땅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점차 날이 밝아오고 그 경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데 기다리던 태양은 지평선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합격자 명단을 살펴보다가 끝내 찾을 수 없었던 내 수험번호처럼 일출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저마다의 소원과 바램을 기원하던 사람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영화관을 나서는 것처럼 우르르 내려갔다. 나는 홀로 남아 구름 낀 제주도의 먼바다와 발아래 화산분화구를 오래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시퍼런 바다와 검은 분화구가 내려다보이는 그 아찔한 경계에서 나는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제주 바람보다 더 서럽게 울고 싶었다. 캄캄한 혼돈 속에 길을 잃은 나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분화구는 까마득한 그 옛날 붉고 뜨겁게 타올라 모든 것을 녹일 기세로 바다를 향해 달렸을 것이다. 끝도 없이 분출하던 진노의 자리는 이제 거대한 원형 경기장처럼 차갑게 식어서 바다 한 귀퉁이에 무겁게 눌러앉아 있었다. 나는 괴로움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용암을 가슴에 품고 성산 일출봉 차갑게 굳어버린 간두에 서서 시퍼렇게 꿈틀대는 바다만 바라보았다.

괴로운 마음을 안고 하늘을 건너서 찾아간 땅의 끝 성산 일출봉에서 나는 아무런 해답도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무언가 전해 들었어도 가슴으로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면서 뜨거움은 면하려는 바보였다.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오랜 세월 면벽 수행을 하던 달마 스님에게 어느 날 한 승려가 찾아와서 달마 뵙기를 청하였으나 거부당했다. 그러자 그는 왼팔을 잘라버렸다. 이에 달마가 다가가 물었다.


“무엇을 구하려 왔느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하고 승려가 답했다.


“그 마음을 내게 가지고 오너라.”


그러자 승려가 다시 답했다.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산굼부리에서 휴대폰을 찾고 비자림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가이드가 혼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 잃은 양을 찾은 목동처럼 그녀는 웃으며 나를 맞았다. 동료들은 이미 비자림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오십 후반의 그녀는 평생을 관광가이드로 일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듯 보였다. 작달막한 키에 되새김질하듯 술술 전하는 입담이 제주 조랑말처럼 다부졌다. 젊을 때는 일에 미쳤었다고 했다. 수많은 단체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너무나 다양한 사고를 경험했고 그럴 때면 어떻게든 수습해야만 했단다. 가정과 일에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결국 병이 왔다고 했다. 죽을듯한 고통을 겪고서 이제 자신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가더란다. 그래서 지금은 홀가분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이 드니까 좋은 점도 있더라고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같이 걷던 그녀가 허리를 굽히고 뭔가를 주웠다. 천년 묵은 비자나무가 떨군 열매였다. 도토리만 한 초록의 열매를 내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향기를 맡아보세요.”


씨앗을 품은 과육을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숨을 들이쉬던 나는 ‘아’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시원한 향이었다. 허브향같이 강하면서 폐부 구석구석을 정화해 주는 청아한 향기였다. 그 순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제주의 모진 바람 속에 천년의 세월을 견디며 버텨온 생명이 전하는 이야기를. 쓸쓸하고 아름다운 비자나무의 노래를.

제주를 떠나는 마지막 날 오후에 월정리 해변에 들렀다. 해변의 모래는 오랜 세월 산호가 파도에 마모되어 이뤄졌다고 했다. 너무 가벼워서 큰바람이 불면 온 마을을 하얗게 뒤덮는다고 했다. 자그마한 해변을 걷다가 만져본 모래는 부드러웠다. 나는 빈손을 찬찬히 오래 바라보았다. 모래는 없고 까슬한 감촉의 기억만 남은 손바닥에서 폭풍처럼 고통이 휘몰아치던 내 이십 대의 모습이 보였다. 파란 정맥이 보이던 투명하고 매끈하던 손은 이제 주름이 드리웠고 여기저기 생채기와 점으로 얼룩이 졌다. 활화산같이 용암을 가슴에 품고 거친 현무암 절벽 위에 서 있던 이십 대의 내가 이제 작고 평화로운 모래사장에 조용히 거닐고 있었다.


일정을 끝내고 까만 밤바다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파랑새처럼 무지개를 넘어가려던 나는 누구인가. 고통과 눈물을 제 살 속에 진주처럼 품고 사는 이 자는 누구인가. 조만간 먼지처럼 바람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버릴 이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십 대때 들리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해답을 삼십 년이 훌쩍 지나 이제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바다의 자손이고 성산 일출봉의 형제요 비자림의 연인이요 언젠가 고통스러운 가슴을 안고 오는 이가 있으면 꼬옥 끌어안고 괜찮다 괜찮다 얘기해주는 제주의 바람이 되고 싶다. 2022년 겨울 따스한 제주도에서 나는 잃을 수도 찾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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